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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363(Print)
ISSN : 2465-8138(Online)
Han-Character and Classical written language Education No.42 pp.165-195
DOI : https://doi.org/10.15670/HACE.2017.42.8.165

A study on the classical chinese literary therapy

Shin, Doo-hwan*
*Professor, Andong national University, Republic of Korea. / E-mail:
2017년 04월 17일 2017년 05월 18일 2017년 05월 27일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classical chinese literary therapy. Can you imagine a therapy major is Chinese literature of therapy in literature among them. Been addressed recently in Western literature into literature from Western therapy is often dependent on.
But the great works of literature of the East, the material of literature in the therapy in works are found. Chinese literature is literature, history, philosophy has scattered series of novels when Asia's way into literature, which is limited in somewhat different from Western literature. Modern hard genre is a variety of Chinese literature sinia to overcome the trauma resulting from the various life force and lies a long history.
Chinese literature close ties with the human character, tension and relaxation, and conflict resolution unit and especially, human nature, based on the works that seek to reform because there are many. The part that can help to therapy. Chinese literature is literature which, of human nature aim to enlighten the literature for therapy in.
Chinese writing is relax the tension during the conflict be a catharsis, with literary personality is to treat trauma as good overcoming evil or that areas that can help to therapy.
Stress of modern man's mental health and education, government offices, business groups in various school students Chinese literature for therapy in treatment, character education is a positive effect. Can be expected to bring good.
Chinese literature as to extend and seek therapy in a variety of therapy use of Chinese writing is stand as a new area of study can do it.
Chinese literature in terms of therapy, redefining needs.

漢文테라피’에 대한 試論

신두환**
**,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E-mail:

초록

이 논문은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인성교육 연구의 일환으로서, 한문교육과 한문테라피의 가능성 을 진단해 보기 위한 실험적 논문이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미술테라피, 음악테 라피, 문학테라피 등 각종 예술을 이용한 테라피가 유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문학테라피는 한문 테라피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문학치료란 서양에서 최근에 출발한 것 으로 서양문학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동양의 훌륭한 문학작품 속에도 문학테 라피의 소재가 될 만한 작품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한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이 종합적으로 산재 되어 있는 동양의 문학으로 시 소설에 국한되고 있는 서양식 문학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문학의 다양한 장르는 현대의 각박한 삶에서 비롯되는 각종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신이한 힘과 유구 한 역사가 잠재되어 있다. 한문학은 인간의 성품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긴장과 이완, 갈등해소 등의 장치가 많고 특히 인성을 바탕으로 교화하려는 작품들이 많아서 테라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한문 학은 인간의 심성을 교화하려는 목적성이 강한 문학이어서 문학테라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학문이다. 한문은 권선징악의 갈등구조에서 긴장이 이완되는 카타르시스로 문학적 성격이 트라우마 를 치료하거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성격이 다른 문학에 비하여 많이 존재한다.
한문학은 현대에도 병든 사회를 치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대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소중한 치료적 기능이 함의되어 있는 귀중한 치료제로서 한문테라피는 현대에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 한문학은 테라피의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관공서, 기업체 등의 집단교육, 각종학교 학생들의 정신건강 교육, 인성치료 등을 위해 한문테라피는 좋은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한문학 테라피의 가능성은 다른 테라피에 비해 더욱 긍정적이고 고무적으로 보인다. 한문테라피의 다양한 활용방안 을 모색하고 확대함으로서 한문테라피는 다양한 교육과 연관된 새로운 연구 분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Ⅰ. 문제의 제기

한문은 현대문화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한국학과 현대문화의 교재를 집필하면서, 한문학의 기능적 역할을 힐링, 테라피, 웰빙, 녹색비평, 생태, 환경 등과 관련하여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1)

21세기에 들어서서 현대의 교육은 산업화와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인성을 상실하는 각종의 병리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심각한 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이에 범세계적으로 인성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다양한 인성교육의 프로그램이 모색되고 있다. 이러한 인성교육의 일환으로한문교육은 가능한 것인가?

한문교육을 통한 한문테라피는 다양한 교육과 연관을 모색하는 심리치료로서 그 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논문은 다양한 교육을 통한 한문 테라피에 대해 그 가능성을 진단해보기 위한 실험적 논문이다.

우리는 다행히 천년을 단위로 세는 밀레니엄의 시작을 경험할 수 있었던 행운의 세대이다. 세계는 21세기의 벽두를 여는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각종 심포지엄과 축제가 전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세계는 21세기에 유행할 각종 단어들을 예측하여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고 있었다. 세계의 언론들 은 21세기에는 ‘Well-being’이란 단어가 유행하게 될 것이라고 예단 했다. Well-being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복지·안녕·행복'을 뜻하며, 우리말로는 '참살이'라고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한다.2) 물질적 인 풍요에 치우치는 첨단화된 산업 사회에서 육체와 정신의 건강하고 조화로운 결합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나 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나 행동”이라고 한다. 국내에 웰빙의 개념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1년 말부터로 파악된다. 그 후 ‘웰빙’이란 단어의 위력은 전 세계를 강타하였다. 웰빙시대를 맞이하여 ‘한문학은 21세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앞으로의 교육의 과제는 당분간 ‘웰빙’과 관련된 ‘인간화’에 집중될 것이다. ‘웰빙’과 관련된 인문학 화두는 ‘환경’ 과 ‘문화’ 였다. 모든 학문은 산업화로 훼손된 생태와 자연환경을 회복하고, 인류의 건강증진과 행복추구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와 함께 산업사회의 각박한 삶에서 일어나는 병리현상에 대한 치유 단어로 유행한 단어는 테라피(therapy)였다. Therapy’ 테라피란 그리스어인 ‘Therapeia’에서 나온 말로 ‘간호하다’, ‘보호하다’, ‘도움이 되다’, ‘돌보아주다’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이 생기거나 여러 가지 고민이 생기면 아폴로 신전의 테라페우테스(Therapeutes)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아폴로 신전의 시종인 테라페우테스는 함께 문제해결의 조언을 해주고 질병의 치료에 도움을 주었다. 이것이 테라피(therapy)의 어원이 되었다. 테라피(therapy)의 사전적 의미는 1.치료 2.치료 효과 3.psychotherapy 4.긴장을 풀어주는 치료 5.요법 등이 사전적 의미이다.3) 따라서 단순한 치료보다는 긴장을 풀어주는 치료의 의미가 더 작용하는 듯하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치료와 ‘테라피’라는 용어를 병행하여 사용한다.

이것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미술테라피, 음악테라피, 문학테라피, 등 각종 예술 테라피가 유행하 고 있다. 이것이 발전하면서 요즈음 최고 유행하는 치유의 단어는 ‘힐링’이다. 힐링(healing)이란? 1.치유 2.치료 3.힐링 4.효과 5.회복 등으로 사전은 설명하고 있다.4)

세계는 의학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정신계통의 치유에 감성을 동원한 회복에 집중하여 각종 예술을 동원한 감성 치료에 몰두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종의 예술 테라피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테라피에 대한 연구가 이미 시작되어 각종 학회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한문학테라피에 대한 시론은 다소 늦은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근에 와서 유행하기 시작한 학문으로 아직 완성된 학문이 아니다. 이 학문들은 다양한 임상실험 중에 있으며 그 치료효과에 대해 과학적인 입증은 아직 유보 단계에 있다.

한문교육은 그 특성 상, 각종 테라피와 관련성이 깊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관련이 깊은 것은 그래도 문학치료의 방법일 것이다. 테라피라는 것은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문학테라피는 의약품처 럼 단시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변화된다. 테라피는 유형을 대상으로 시각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무형적이고 감성적인 정신과 마음을 치료하는데 집중된다. 원초적인 감수성 을 자극하여 심리상태를 변화시켜가며 서서히 정서를 자연적으로 치료해 가는 것이다.

현대 생활은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트라우마란 신체적, 정신적 外傷을 말한다. 외상의 사전적 의미는 ‘사고나 폭력으로 몸의 외부에 생긴 부상이나 상처를 이르는 말’이다. 트라우마는 주로 신체적 외상보다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심적·정신적 외상(Psychological Trauma) 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트라우마를 ‘외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심리 적 외상’으로 정의한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대형사고와 같은 대규모 참사에서부터 타인에게 당한 폭력이나 강간 등 신체적, 성적, 정서적 학대는 모두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는 일시적인 사건으로 발생한 트라우마와 가정에서의 상습적인 학대나 장기간의 집단 괴롭힘 등 반복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구분하기도 한다.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와 같은 정신장애를 유발하기도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이나 사고, 자연 재해, 폭력, 강간 등 심각한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나타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PTSD 환자는 꿈이나 생각으로 사건을 반복적으로 재 경험하며 그로 인한 극심한 불안과 공포, 무력감, 수면장애 등에 시달리게 되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힘들어진다. PTSD 증상은 사건 이후 몇 십 년이 지나 나타날 수도 있으며 특히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다시 새로운 충격을 받으면 PTSD와 같은 증상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5)

현대의 각박한 생활에서 생성되는 각종의 현대병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의 방법으로서 각종 테라피가 유행하고 있다. 현대의 교육가나 비평가들은 미술테라피, 음악테라피, 문학테라피, 독서테 라피, 등 다양한 테라피를 통하여 이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테라피는 사실 선사시대 때부터 있어 왔다. 고대 풍속에도 노래, 춤, 무용 등 원시종합예술 을 경연하면서 그 예술 활동 속에서 치유의 효과는 있어왔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 미술, 음악, 무용치료에 이어, 독서치료, 문학치료, 등 각종 예술 테라피가 실험적인 연구 단계로 약 50년 전부터 무성하게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치료적인 효과 면에서 과학적인 입증이 불가능 하여, 아직도 미완성의 학문으로 일부 전문가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 논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대문화 속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테라피에 대한 관찰과 이것이 한문학과 어떻게 관련지을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후 테라피에 대한 다양한 자료 수집 및 문헌을 조사한 후, ‘한문학 테라피는 가능한 것인가?’라 는 가설을 설정해야 한다. 이 연구는 한문학테라피의 가능성을 대중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논지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설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황당하거나 막연한 我田引水격의 지나친 주장은 통제되어야 한다. 그 후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종합하여 자료를 해석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문학의 주변적 연구 보다는 문학작품 속으로 들어가 테라피를 중심에 두고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여 그 기능적인 면을 부각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심미적인 비평과 생태비평이 동원되어야 한다. 문학의 생태비평도 약 50년이 채 되지 않는 최근의 문학비평으로 문학테라피와 관련성이 깊다. 현재 한문학 연구의 상당수는 작품에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를 중심으로 파벌이나 사회상에 집중하거나 장르상 문제나 문체의 성격 등에 집중되고 있었다. 한문학 테라피를 위해서는 작품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해 내야한다. 한문테라피는 어쩌면 자연과학의 탐구방법론 을 인문학에 적용하는 셈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연구과정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한문학 테라피는 인문학인 동시에 의학이고 과학이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국어교육의 일환으로 고전문학을 활용한 문학치료 연구의 선편을 잡은 학자는 정운채이다. 그는 고전문학에서 문학치료의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해 왔으며, 그의 다양한 고전문학 과 문학치료의 연구는 이 분야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6) 여기에는 일부 한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문학치료를 연구한 논문들도 발견된다. 그 이후 변학수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에 의해 서구의 문학치료학에 대한 정황과 문학과 치료에 대한 개념 및 정의를 위해 애쓴 학자들의 업적도 눈에 띤다.7)

지금까지 테라피는 서구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문학을 대상으로 하여 단순한 작품 감상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문학 분야에서 테라피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된 논문은 아직까 지는 없다. 우선 한문학은 현대문화와 더불어 테라피와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문학은 문학치료적인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본고에서는 한문테라피의 가능성을 진단하 여 한문학의 현재적의미를 웰빙, 힐링, 테라피의 문화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Ⅱ. 테라피의 역사와 종류

1. 테라피의 역사

BC, 1300년 경 고대 이집트의 테베에 있는 도서관에는 ‘영혼의 치유 장소(The Healing Place of the Soul)’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한다. ‘영혼의 시약소’, ‘영혼의 진료소’, ‘영혼의 요양소’, ‘영혼을 위한 약방’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8) 이 문구는 독서가 영혼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는 가정을 상상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문학치료는 있어 왔다.

孔子(BC,552-BC,479)는 논어에서 ‘詩經 삼백 오편은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이다’[‘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9)라고 하였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 ‘思無邪’ 정신은 문학테라피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시에는 사특한 마음이 없다. 이것은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시를 쓰는 동안 그 시상이 아름답고 선하기 때문에 사특한 마음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한시 작가들은 대부분 심성 수양의 수단으로서 한문학을 해 왔으며, 이것에서 문학테라피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아니 하는가? 시는 감흥을 일으킬 수 있으며, 사물과 마음을 관찰할 수 있으며, 여러 사람들과 무리지어 어울릴 수 있으며, 원망할 수 있게 한다. 가까이는 아비를 섬기며 멀리는 임금을 섬기고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될 것이다.”고 하셨다.10)

이것은 공자의 문학관을 볼 수 있는 興·觀·群·怨 이다. 여기에도 문학테라피의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흥기하는 것과, 사물을 정서적으로 관찰하는 것과, 친구들과 위아래가 어울리는 것과 원망을 토로하는 것은 문학 테라피와 깊은 관련이 있다. 춘추시대에 이미 문학테라피의 흔적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孔子(BC,552-BC,479)의 ‘論語’ 八佾편에서 공자는 “詩經, 關雎의 시는 즐거워하면서도 지나치 지 않고 슬퍼하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시를 감상하는 태도이다. 이 문구에도 문학치료의 성격이 함의 되어 있다. 詩敎, 樂敎, 등의 용어에서 우리는 사회를 정화시키는 교화의 의미를 해석해 낼 수 있다. 이것 또한 문학치료의 입장에서 보면 병든 사회를 순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또, 공자의 제자 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곳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 〔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감탄하며 허여한 내용이 《논어》〈先進〉에 나온다. 이것은 산수자연 문학의 근원이 되는 것이니, 이것은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그 정신이 시원해져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이다. 이것은 테라피에 시사하는 바가 깊은 것이다.

孟子(BC 372~BC 289)는 “伯夷의 풍모를 들은 자는, 완악한 이는 청렴해지고 나약한 이는 흥기하게 된다.[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11) 하였다.

이 문구는 변화와 치료적인 기능을 암시하고 있다. 한문학 작품 중에 완악한 이가 청렴해 질 수 있는 작품을 찾아서 읽게 하고 나약한 이가 흥기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서 읽고 느끼게 지도하면, 동일시가 일어나고 감화가 일어나서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곧 치료라고 보는 것이 문학치료(독서치료)이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는 그의 ��시학��에서 문학을 ‘카타르시스(katharsis)’라고 했다. 카타르시스란? 淨化 · 排泄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 제6장 비극의 定義 가운데에 나오는 용어. ‘정화’라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한편, 몸 안의 불순물을 배설한다는 의학적 술어로도 쓰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의에 대해서는 이 구절의 표현이 불명료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異說이 분분 한 채 오늘에 이르지만, 요컨대 비극이 그리는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에 의해서 관중의 마음에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격렬하게 유발되고, 그 과정에서 이들 인간적 정념이 어떠한 형태로인 가 순화된다고 하는 일종의 정신적 昇華作用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마음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말 · 행위 · 감정으로써 밖으로 발산시켜 노이로제를 치료하려는 정신요법의 일종으로, 淨化法, 除反應이라고도 한다. 국어 사전에서는 카타르시스를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이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일이라고 정의 했다.

심리학적으로는 정신 분석에서,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나 상처를 언어나 행동을 통해 외부로 드러냄으로써 강박 관념을 없애고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12)

카타르시스에는 문학치료의 기능이 함의되어 있다. 동서고금의 문학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 는 역할을 한다.

초기의 독서와 의학과의 관계에 대한 기록은 로마 백과사전 편찬자인 아우루수 코르네리우스 켈수스의 글 속에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문학을 실제로 치료에 사용하였던 기록은 고대 아라비아 의 아파츠 시대에 카리프아르미수르가 카이로에 건립된 병원에서 이슬람교 성전인 [코란]이나 기독교의 [성서]를 환자에게 읽혀 병을 치료한 것이 최초라고 전해진다.13)

2. 테라피의 개념과 종류

1) 미술치료

미국 미술치료협회(American Art Therapy Association)는 미술 치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미술 치료(Art therapy)란 전문적 관계 내에서 병, 트라우마 또는 삶에서의 도전들에 직면한 사람들이나 개인적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예술 작업이 치료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전문적인 미술 치료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정신질환자, 시설에 있는 성인, 환자들의 그림을 정신 병리 진단의 보조도구로 사용되었다. 독일의 의사 프린츠 호른(영어: Prinzhorn,1886~1933)은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의 그림으로 진단을 시도하였고, 그림들을 수집하여 1922년 '정신병자의 예술가적 기질'(Bildnerei der Geisteskranken)이라는 저술을 발표하였다. '미술 치료'라는 용어는 1961년 미국의 미술작가 울만(Ulman)이 《미술치료 회보(Bulletin of Art Therapy)》 창간호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후 미술 치료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는데, 전쟁 후 미국에서는 정신질환자, 사회 부적응자들이 속출하게 되었고, 각종 심리치료기법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다. 이에 1969년 미국 최초로 미국 미술치료협회가 세워지게 되었으며 심리학의 발전과 함께 전문적인 치료 분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는 치료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장을 돕고 개발시키는 목적으로도 미술 치료를 활용하고 있다.

2) 음악치료

캐나다 음악치료협회(Canadian Association for Music Therapy)의 음악 치료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음악치료(Music therapy)란 개인의 신체적, 심리적, 정서적 통합을 돕고 병과 결함을 치료하는데 음악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근대 음악 치료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하였 다. 당시 환자를 수술할 때 갖는 두려움이나 마취시 통증을 없애기 위한 보조치료 수단으로 음악을 사용하였다. 음악 치료는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정서장애를 입은 사람들 의 치료가 요구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1950년에는 미국 음악치료협회(the National Association for Music Therapy)가 세워져 음악치 료사의 교육, 연구, 임상 실습 등에 대한 규정이 만들어졌으며, 현재는 개인의 성장을 돕고 삶의 만족감을 증진시키는 목적으로도 음악 치료를 활용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예술치료는 정신질환, 자폐증 등 구체적인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 외에도 일반인 각자의 인격 성장과 발전, 자아 통찰력의 증진 등 자아성찰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트 테라피는 음악, 미술, 무용, 등 예술 장르들을 활용하여 심리, 사회, 운동 치료를 의미한다. 아트 테라피는 최근 현대인의 삶의 가치 및 정신건강을 향상시키는 하나의 수단 및 보완대체의학으 로 활용되고 있다.14)

다양한 예술 테라피는 의학분야에서는 심신치료 및 뇌활동 강화, 재활치료 등에 활용되고 있고, 교육 분야에서는 인터넷 중독, 학교 부적응자 치료, 학교폭력예방 등에 활용되고 있다. 예술 테라피
는 일반 시민을 위한 웰빙 및 힐링을 목적으로 활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다. 예술치료에는
문학도 포함 될 수 있다.

3) 문학치료

문학치료란 심리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 문제의 해결과 개인의 내적 성장을 위한 문학의 의도적 사용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시치료라고 협의적으로 해석되는 포이트리페라피(poetry therapy)는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라는 용어와 함께 문학치료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문학치료란 문학을 촉매로 참여자와 치료사(촉진자)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다”라고 말한다. 문학치료는 문학을 매개로 참여자와 촉진자(치료사)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치료효과를 이끌어내 는 것이다.

전미문학치료학회(NAPT: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Poetry Therapy)는 2008년 현재 문학 치료에 대한 용어를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시치료(PoetryTherapy), 저널치료(Journal Therapy), 문학치료(Bibliotherapy), 시/저널치료 (Poetry/Journal Therapy), 문학촉진활동(Applied Poetry Facilitation), 시/문학치료 (Poetry/ bibliotherapy), 이 모든 용어는 성장과 치료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문학과 글쓰기를 매개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포이트리테라피라는 말이 사용될 때 그것은 협의의 시치료가 아니라 위에 말한 모든 것, 즉 문학과 저널 등 모든 문학치료적 방법을 포함한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문학치료를 뜻한다. 수 천 명의 전문가들이 개인적 성장과 치료를 돕기 위해서 시와 저널, 그리고 다른 다양한 형태의 문학을 사용하고 있다.”15)

독서치료(bibliotherapy)란? 책을 사용하여 정신적 건강을 위해 사용하는 치료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독서치료라는 말의 어원은 biblion(책, 문학)과 therapeia(도움이 되다, 의학적으로 돕다, 병을 고쳐주다)란 그리스어의 두 단어가 결합된 복합어로서 문학이 치료적인 특성을 가졌다는 기본 가정에서 출발한 용어이다. 즉 전반적인 발달을 위해 책을 사용하며, 책은 독자의 성격을 측정하고 적응과 성장, 정신적 건강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 책과 독자의 상호작용을 독서치료 라고 한다. 그리고 선택된 도서 자료에 내재된 생각이 독자의 전신적 또는 심리적 질병에 치료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개념이다.16) 따라서 이러한 용어의 대립은 문학치료로서 통칭될 수 있다.

문학치료에서 말하는 문학은 상상의 문학, 이야기, 신문기사, 노랫말, 연극, 시, 영화, 비디오, TV드라마, 저널(일기) 등 생각과 느낌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광의의 문학을 말한다. 치료 경험은 문학치료사, 또는 문학치료의 교육과 훈련을 거친 전문가의 “촉진”을 통해서 이루어진 다. 촉진자는 그 치료그룹 또는 개인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밀어주고 끌어주고 돌보는 사람이다. 문학치료사는 촉진자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모든 촉진자가 문학치료사인 것은 아니다.

전미문학치료학회(NAPT: The National Association for Poetry Therapy)는 언어와 상징, 그리 고 이야기를 통한 성장과 치유를 촉진하기 위해 시인, 작가, 지속적으로 저널(일기를 말함)을 쓰는 사람들, 전문사회봉사자, 전문건강보조사, 교육자, 그 외 언어의 치료적 힘을 인식하고 인정하 고 있는 문학애호가들이 모인 범세계적인 역동적 공동체이다. 이곳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문학치료사는 정신건강, 의학, 노인학, 교육, 치료와 관련된 분야와 지역사회 복지를 위한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문학 치료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학치료 혹은 치료와 성장을 위해 시가 쓰인 예는 원시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적 제의에서 무당이나 제사장들은 개인이나 부족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 시를 읊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최대한 즉각적인 효과를 위해 파피루스에 글을 써서 그것을 물(액체)에 녹여서 환자가 마시게 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1030년경에는 다윗이라는 소년의 음악이 사울왕 속의 “야수”를 잠재우기도 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역사적으로 의술과 예술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신화 속 아폴로 신이 의신(醫神)이면서 동시에 시/예술의 신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치료사는 1세기 소라누스라는 로마 의사였다. 그는 조증환자 에게는 비극을 우울한 사람에게는 희극을 처방하였다.

미국의 경우 1751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세운 미국 최초의 병원인 펜실베니아 병원에서 정신질환 자의 치료에 책와 글쓰기, 출판 등 문학을 보조로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미국 심리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러쉬는 음악과 문학을 효과적인 보조수단으로 치료에 사용하였으며 환자들이 쓴 詩를 그들이 만든 신문인 일루미네이터 지에 실은 기록이 남아 있다.

문학테라피라는 말은 1916년 Samuel Crothers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이 용어는 정신과 환자들을 위해 책(biblio)을 선택하고 사용하기 위한 특별한 명칭이 필요한 도서관 사서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초기 비블리오테라피라는 명칭은 구체적 정보를 주는 책 뿐 아니라 책의 주인공이 독자에게 모본이 되거나 경고가 되는 가상의 소설들을 사용하는 것을 뜻하였다. 일부 의사들은 병원 도서실의 사서와 긴밀히 협력하였는데 이는 사서들이 환자들 뿐 아니라 그들의 모습이 그려진 문학작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서들은 비블리오테라피라 는 말을 계속 살리고 싶어 했으나 그들이 실행한 비블리오테라피는 오늘날의 문학치료와 달리 문학작품에 대한 환자의 개인적인 반응에 대한 계획된 토의가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당시 치료에 사용되던 독서는 책과 환자(참여자)와의 직선적 관계로 [독서치료(reading bibliotherapy)]에 해당 하며 시/문학치료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17)

고대 원시사회에서는 원시제전에서 볼 수 있듯이 주술행위(주술/노래/시)의 일부분이었던 것이 오늘날 문학으로 정착되었다. 그대 그리스에서는 프시케가 마음이나 영혼을 의미했고, 로고스는 말과 세계를 의미하였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오체아누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말은 병든 마음의 의사다”라고 말하였다.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에 소라누스라는 의사가 처음으로 내담자에게 시와 드라마로 처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의학과 문학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서술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도서의 가치에 대하여 영감, 정보, 오락의 가치가 있다고 하였지만 20세기 들어와서 문학의 치료적 가치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18)

한국에서는 정운채에 의해서 「시화에 나타난 문학의 치료적 효과와 문학치료학을 위한 전망」이 란 논문이 1999년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서 문학치료의 정의와 개념 그리고 문학 치료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정운채는 고전문학교육과 문학치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시킨 결과 문학치료에 대한 그 연구의 단초가 이루어져 왔다. 정운채는 처용가, 시화, 시교설, 서사 등 한국의 고전시가에서부터 일부 한문학에 대한 것까지도 포함해서 문학치료의 실험적 연구를 꾸준히 진행 하였다. 그러나 학계는 이 연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문학은 아직까지 문학치료적인 측면에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4월, 한국어린이문학교육학회 산하 독서치료 분과모임을 시작으로, 2003년 독서치료학회가 창립되었다. 2003 한국문학치료학회가 생겨나서 이 분야의 연구를 집적해 놓고 있다. 이것은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치료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점차 중학교, 고등학교로 번져가는 추세이다.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문학치료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문학적 비평을 토대로 하기 보다는 교육치료의 성격을 바탕으로 발전해 오고 있으며,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2004년 경북대학교 일반대학원에 문학치료학과가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강원대학교는 2007년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 사업에 선정되어 세계 최초로 인문치료학을 창설하였다. 인문학의 여러 분야 교수들이 모여 인문학 치료의 패러다임을 연구해 오고 있다.

문학의 미학비평과 생태비평을 바탕으로 하는 심도 있는 문학치료학은 이제 출발단계에 와있다. 한문학 분야에서도 본격적인 문학치료학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문 테라피는 문학테라피의 일종으로서 문사철을 함의한 한문의 특성을 고려하여 광범위한 한 의미로 활용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Ⅲ. 한문테라피의 가능성

황화문명의 고대에는 시가를 비롯해,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원시종합예술이 유행하면서 발전해 왔다. 황하 강 유역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문화를 창조해온 황하문명은 시작과 함께 오랜 역사를 포함하고 있고, 그와 함께 발생한 한자를 바탕으로 생활해 오며 다양한 한자문화를 창조해 왔다. 한문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흘러오면서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간직하고, 수많은 명문과 명시들 등 다양한 생활의 지혜를 담은 자료들을 풍부하게 함의한 채 文·史·哲의 종합체로서 우리 앞에 와있다. 한문학은 이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폭넓게 함의하고 있는 학문이다. 여기에는 문학테라피를 포함해서 현대의 병든 정신을 치유할만한 다양한 테라피의 자료가 무진장으로 함의 되어 있을 수 있다.

일단 한문학은 문학치료적인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문은 문학치료의 입장에 서 읽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에서 가독성이 문제가 된다. 또, 문학치료의 중요한 부분인 쓰기 기능인 작문의 기능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한문의 이해를 도와주는 한문치료사의 활용과 번역으로 대치 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유행하는 책<사라지는 번역가> 작가 조르주 무냉(Georges Mounin)은 '채색 유리'와 '투명 유리'로 번역을 구분했다. 전자는 유리가 있다는 걸 즉각 알 수 있는 직역, 후자는 유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정도로 새롭게 번역한 의역을 말한다. "채색 유리든 투명 유리든 번역자는 유리가 되어야 한다. 저자 앞으로 나설 수 없고 텍스트를 넘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리가 되어야 할까? 어떻게 사라져야 옳은가?" 번역자는 "단락에서, 행간에서, 역사의 갈피에서" 사라진다.19) 이 말은 번역의 소중함과 생명력을 역설한 것이다. 그 작품을 소통시킨 번역가의 역할은 남는다. 한문의 가독성과 작문의 문제는 훌륭한 번역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문테라피는 번역과 작문이 가능한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에겐 한문테라피 치료사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원문의 감동과 번역의 감동이 일치하는 한 한문 테라피는 가능하다. 작문에서 보다 번역을 하게하는 쓰기 활동은 고도의 정신치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한문학을 테라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온통 웰빙이요, 소동파의 적벽부가 온통 힐링이다. 이백과 두보의 한시 속에 나타나는 기발한 비유와 상징, 그 심미적인 표현 속에 감동해 가다보면 어느새 일어나는 흥은 힐링이 아닐 수 없다. 한시를 산책하면서 머리를 시원하게 하는 산수 자연을 읊은 한시 한편이 자연적인 진통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한문학의 기능적인 측면의 연구에 소홀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문학의 기능적인 면에서 명쾌한 증명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문학을 치료의 입장에서 다시보자. 두통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진통제 같은 한문치료는 없을까? 미술치료, 음악치료, 문학치료처럼 한문학치 료도 가능한 것인가? 한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테라피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한 고민은 우리 한문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로 자리매김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을 하고나면 상쾌한 정신 상태를 향유할 수 있듯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한문학을 산책하면서 힐링을 하면 치유 효과가 없을까? 힐링 한문학 이것은 상처받은 현대인들에게 안정과 풍요로운 치유와 회복의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한문학테라피의 가능성에 연구를 집중시켜보려 한다.

현대생활에 받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멋진 한문 작품하나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여기에서는 한문학의 현재적의미를 웰빙, 힐링, 테라피의 문화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宋나라 陸游의 「夏秋之交久旱得雨喜作」 시에

“누워서 빗소리 듣다 보니 묵은 병도 벌써 말끔, 돌아다니며 시를 읊다 보니 시름도 모두 없어질 듯.[臥聽病良已 行吟愁欲無]”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한시가 병도 치유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이 시구는 한시테라피를 긍정하게 하는 중요한 표현이다.

또, 蘇軾의 시에 “병 때문에 한가하게 된 것은 별로 나쁘지 않나니, 마음 편하게 함이 약이지 다른 처방이 있겠는가.[因病得閒殊不惡 安心是藥更無方]”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0 病中遊祖塔院》 이 문구에서는 시를 약에 비유하며, 한시와 치유의 기능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시구 도한 테라피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한시테라피를 고무시켜주고 있다.

또 陳琳(?~217)은 後漢 말기의 文士로 자는 孔璋이며 徐州 廣陵郡 사람이다. 建安七子 가운데 한 사람 으로 문장에 뛰어났으며 특히 격문을 잘 지었다. 일찍이 袁紹를 위하여 曹操의 죄상을 열거하는 격문을 지었는데, 그 글이 매우 신랄하여 조조를 분격시켰다. 원소가 죽은 뒤 원소의 아들들이 서로 다투다가 멸망하자 조조에게 잡혔는데, 조조는 그 재주가 아까워 죄를 주지 않고 記室을 삼았다. 조조는 자주 頭 風을 앓았는데, 하루는 몸져누운 채로 진림이 지은 격문을 보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이 글이 내 병을 치유해 주었다.[此愈我病]” 하고,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20) 《三國志 卷21 陳琳傳》

이글은 산문인 격문이 두통을 낫게 하는 치료효과를 입증해 주고 있다. 이것은 한문학 테라피 중에 격문테라피가 될 수 있다. 한문학은 이른 시기부터 이미 다양한 문학 테라피를 진행해오고 있었다. 다만 한문학을 문학치료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다. 한문학을 테라피의 입장에 서 바라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문학의 힘은 위대하다. 한문학에도 긴장을 이완시키는 카타르시스 의 기능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한국의 한문학 속에서도 테라피가 묘사된 부분이 나타난다.

연암 박지원은 18세에 동료선비들에게 당파싸움과 염량세태의 비인간적인 트라우마를 겪으며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음악, 서화, 골동 등을 가까이 하며 더러는 손님을 위해 해학과 고담을 들으며 마음을 위안하고자 하였으나, 우울한 증세는 치유할 길이 없었다. 마침내 유모어와 해학이 넘치는 민옹을 천거하는 이가 있어서 그를 초대했는데, 민옹은 기발한 방법으로 환자의 입맛을 돋우어 주고 잠을 잘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신은 무슨 병이 들었수? 머리가 아픈거유?" “아니오." 그는 또 “배가 아픈 거유?"
하고 물었다. 내가 또 “아니오." 대답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병이 아니라오."
그는 곧 창을 열고, 들창을 걷어 괴었다. 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자 내 마음이 차츰 시원해져서, 예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그래서 민영감에게 말하였다.
“나는 특히 음식 먹기를 싫어하고, 밤에는 잠을 못 잔다오. 이게 바로 병이지요."
민영감이 몸을 일으켜 나에게 치하하였다. 내가 놀라면서
“영감님, 무엇을 치하하신단 말이오?" “당신은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음식 먹기를 싫어한다니, 살림 살이가 나아지지 않겠소? 게다가 잠까지 없다니, 낮밤을 아울러서 나이를 갑절이나 사는 게 아니겠소?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나이를 갑절으로 산다면, 그야말로 수(壽)와 부(富)를 함께 누리는구려." 얼마 뒤에 밥상이 들어왔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이것저것 골라서 냄새만 맡을 뿐이었다. 민영감이 갑자기 크게 성내며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영감님, 왜 노해서 가시렵니 까?" 물었다. 민영감이 말했다.
“당신은 손님을 불렀으니 손님에게 먼저 음식을 권해야지. 어째서 혼자 먹으려고 하오? 이건 나를 대접하는 도리가 아니라오." 나는 사과하면서 민영감을 붙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빨리 밥상을 올리 게 하였다. 민영감은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붙였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음식을 가득 올렸다. 나는 저절로 입안에 침이 흘렀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코밑이 트였다. 그제야 옛날처럼 밥이 먹혔다.
밤이 되자, 민영감은 눈을 감고 단정하게 앉았다. 내가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걸었지만, 그는 더욱 입을 다물었다. 나는 몹시 무료하였다. 한참 뒤에 민영감이 별안간 일어나서 촛불 똥을 긁어 버리며 말 하였다.
“내 나이가 젊을 때엔 눈에 스치는 글마다 곧 외웠지만, 이젠 늙었다오. 그래서 당신과 내기 약속을 해 보리다. 평생 보지 못한 책을 뽑아 내어 각기 두세 번 눈으로 훑어본 뒤에 외워 보려오. 만약 한글자 라도 잘못되면 벌을 받기로 약속하는 게 어떻겠소?" 나는 그가 늙었음을 기화로 하여 “그러지요." 대답 하고는 곧 시렁 위에서 {주례}를 뽑았다. 그 책에서 민영감은 [고공]편을 골랐고, 나에게는 [춘관]편이 돌아왔다. 잠깐 뒤에 민옹이 “나는 벌써 다 외웠다우."
하고 나를 일깨웠다. 나는 아직 한차례도 훑어보지 못한지라, 깜짝 놀라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청하였다. 영감은 자꾸만 재촉하여,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나는 그럴수록 외울 수가 없었다. 졸리운 듯 하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하늘이 밝은 뒤에야 민영감에게 “어제 외운 글을 기억하시오?" 물었다. 민영 감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외우지 않았다오.">21)
-박지원 민옹전 중에서-

이것은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저열함에 상처를 입은 트라우마로 우울증과 불면증과 식욕의 감퇴로 고생하는 연암이 치료의 목적으로 유머러스한 민옹을 만나 유모어 테라피, 이야기테라피를 하여 치료하는 장면이 묘사 되었다. 거기에는 자신도 모르게 치료되어 가는 것을 묘사한 구절들에 문학테라피의 기능이 입증된다.

이 이야기 속에는 테라피가 함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한문테라피의 가능성을 어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연암의 양반전, 호질, 열하일기 등 한문학 작품 속에 이러한 이야기는 한히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류의 한문단편, 속에는 한문 산문의 테라피 자료가 무수히 많다.

한문학은 다양한 장르에서 트라우마에 대한 면역력과 치유력을 꾸준히 축적해 왔다. 한문학은
예술테라피의 보고일 수가 있다. 이 광활한 한문학의 영역 속에는 테라피의 재료가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을 수 있다.

일찍이 최치원은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제천에게 소망은 난세를 구해 주시는 것 濟川終望拯湮沈
청신한 시편 받들고서 속된 마음 씻었다오 喜捧淸詞浣俗襟22)

한문학의 힘은 사회적인 트라우마를 정화시킨다. 예를 들면 세월호의 상처로 아픔에 잠겨있는 사회를 치유하는 것도 문학의 힘은 가능할 수 있다. 문학의 힘은 때로는 정치보다도 강하다. 이 시구에서도 사회를 정화시켜주고 개인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드러난다. 카타르시스 이것은 문학치료이다. 濟川은 재상을 비유하는 말로, 배찬을 비유한 존칭이다. 高宗이 傅說을 재상으로 삼으면서 “내가 만일 큰 내를 건너게 되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겠다.〔若濟巨川 用汝作舟楫〕”라고 한 말이 《서경》 〈說命上〉에 전한다. 이것은 청신한 시 한편으로서 마음을 힐링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사회적인 트라우마를 문학으로도 구제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문학은 상처 입은 사회도 충분히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는 신라시대에 이미 한시테라피가 존재해 왔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신라시대 한문학테라피 의 자료를 삼국유사 안에서 찾아본다면 수많은 이야기 치료의 재료가 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문학테라피의 측면에서 삼국유사를 재조명해 졸 필요가 있다.

퇴계도 당대의 잔인한 사화를 거치면서 당시 사회에 대한 부적응으로 심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었다. 퇴계는 일찍부터 병약한 몸으로 관직을 사퇴하고 도산에서 쉬고 싶어 했다. 그는 관직에서 늙은 후에야 은퇴를 하고 도산에 물러나와 힐링을 했던 기록이 그의 어록 및 「도산잡영」을 비롯한 그의 강호가도에 묻어난다.

농암 이현보가 청량산에 은거하여 분천가단을 만들고 도영명의 귀거래나 어부가 같은 시가들을 읊으며 강호에 늙어 갔던 강호가도가 온통 힐링이요. 한문학 테라피였다, 퇴계가 산수자연을 한시로 읊으며 감발융통하는 강호가도의 한시들도 온통 웰빙이고 힐링이며 한문학 테라피이다. 더 나아가 구곡시가 같은 조선의 강호가도가 온통 한문학테라피의 영역 속으로 들어온다.

퇴계는 「陶山十二曲跋」에서 “내가 일찍이 李鼈의 노래를 대략 모방하여 ‘도산 육곡’을 지은 것이 둘이니, 其一에는 ‘志’를 말하였고, 其二에는 ‘學’을 말하였다. 아이들로 하여금 朝夕으로 이를 연습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안석에 기대어 듣기도 하려니와,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한편 스스로 舞蹈를 한다면 거의 鄙吝을 씻고 感發하고 融通할 바 있어서, 歌者와 聽者가 서로 힐링이 되는 면[資益]이 없지 않을 것이다.”23)라고 하였다. 이 속에 웰빙과 힐링과 테라피가 함의되어 있다. 문학치유의 핵심은 작품과 독자사이에 感發融通하는 감동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치료는 작가와 작품, 작품과 독자 사이에 상호 교통하면서 치유되어 가는 과정이다. 문학치료의 핵심은 아름다운 감동과 심미적 체험에 있다.

이것은 문예활동이 상처받은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약과 같은 것들이다. 한문학을 기능적인 면에서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한문학은 현대인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늘 무언가 있기는 한데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항간에 유행하는 의약품 선전 문구처럼 좋다는 것은 분명한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문학이 좋다는 것은 분명히 알면서도 우리는 이 한문학테라피를 대중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몰랐다. 우리는 한문테라피 를 위하여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율곡도 ��정언묘선 서��에서 “시는 비록 배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지만 성정을 읊기 때문에 청정하 고 화평함이 밝게 나타나고 가슴 속의 더러운 찌꺼기를 씻어낸다면 또한 성정을 보존하고 성찰하는 데 일조가 될 것이다.”24)라고 하였다.

이것은 한시테라피를 긍정하는 표현이다. 한시는 한문테라피의 꽃이다. 율곡은 “사물을 끌어와 흥취를 읊은 작품들이 冲澹蕭散하여 마음을 풀어낸 것이 비린내나 찌꺼기의 난잡함이 전혀 없으니, 사물을 잘 관찰하는 사람들은 고기 한 점을 맛보고도 아홉 솥의 국 맛을 알 수 있는 법이라 어찌 꼭 많을 필요가 있겠는가.”라고도 하였다.

율곡의 이런 표현들이 한시 테라피를 연구하려는 학자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대산 이상정의 다음과 같은 문구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詩想이 청신해서 항상 맑은 가을 경치를 대하듯 정신을 晴朗하게 해 준다25)

이 문구도 깊이 상상해 보면 한문학 테라피의 가능성을 시사한 점이 드러난다.

李穀의 다음 시도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시구이다.

병석에 누운 뒤로 겨울 지나 다시 봄 一臥經冬復歷春

요즘 시주 덕분에 기분이 좀 좋아졌소 近憑詩酒暢精神26)

시를 읊조리며 술을 먹는 것도 때로는 우울한 마음을 씻어내는 치유의 기능을 한다. 병후 회복에 무엇보다도 시가 좋다는 말이 있을 수 있다. 한시는 병후 회복에 실재로 치유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된다.

한문학의 기본 교과목인 사서오경을 비롯한 유교경전에는 심성을 치료할 자료들이 무수히 보존 되어 있다. 유교 경전을 테라피의 입장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색의 다음의 시는 한문치료의 가능성을 유교경전에 찾아보게 하는 가능성을 확신하게 해준다.

늙은이가 이부자리에 누워서 老翁偃袵席
소녀를 시켜 삭신을 밟게 하노니 小娃踏肌肉
삭신은 절로 몹시 고통스러우나 肌肉自酸辛
혈기는 끊이거나 이어짐이 없네 血氣無斷續
탕약은 정맥을 비보해 주고 湯藥補正脈

침석은 사독을 공격하는데 針石攻邪毒
성인이 오묘한 학술을 세웠으니 神聖立妙術
전심하면 치곡을 할 수 있거니와 專心能致曲
누가 알았으랴 밟는 법이 있어 誰知有踏法
나의 고통 쾌히 위로해줄 줄을 快慰我慘酷
심신은 이내 청명해지고 神志旋淸明
몸은 방금 목욕한 듯 가벼워지네 身輕如初浴
섭생이 어찌 어려운 일이리오 攝生豈難事
너는 우선 욕심을 적게 할 지어다 汝且先寡欲27)


이 시는 고려 시대의 병 치료에 대한 일면을 보여주는 시로 흥미롭다. 이 시의 詩眼은 ‘致曲’과 ‘寡欲’에 있다. ‘致曲’은 《中庸章句》 致曲에 나오는 말이다. 誠이 아직 미진하여 聖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大賢 이하 사람들에 한해서, 一偏的인 善端의 발현을 말미암아 그것을 모두 미루어 실천해서 각각 궁극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中庸章句 第23章》 致曲은 범인이 천도의 성에 이르고자 하면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성을 다하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바뀌어 지고 바뀌어 지면 새로워지나니 오로지 하늘의 성이 온 세상의 사람들을 새롭게 하나니라.[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 爲能化]28) 마지막 구에 寡慾이라고 표현하여, 섭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욕심을 줄이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한문테라피의 범주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되고 새롭게 되는 치유의 기능으로 볼 수 있다. 모든 화의 근원은 욕심에서 나오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도 좋은 것이 없다. 우리는 이와 같은 구절들을 유교경전에서 무수히 읽어 왔다. 유교경전 속에는 심성을 치료하는 수많은 테라피가 존재한다.

남효온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동쪽에서 해가 떠 환히 밝은데 東日出杲杲
신령한 비에 나뭇잎 떨어진다 木落神靈雨
창을 열매 모든 생각 맑아지나니 開窓萬慮淸

병든 몸에서 날개가 생기려 한다 病骨欲生羽29)

이런 시는 읽기만 해도 머리가 시원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한시의 감상 속에 병이 치료가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이다. 자연에서 힐링한 것을 한시로 창작하면서 더욱더 힐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시의 창작은 문학테라피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테라피를 의식한 한시의 습작은 문학 창작이 테라피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문학치료와 그 연관성이 깊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이 시를 외우게 한다면 치료효과는 있을 수 있다

백거이는 두통을 앓으며 병중에 다음과 같이 읊었다.

육십 팔세 쇠약한 늙은이 六十八衰翁
쇠약함 틈타 온갖 질병 침범하네 乗衰百疾攻
썩은 나무는 좀먹기 마련이고 朽株難免蠧
빈구멍엔 바람 들기 십상이네 空穴易來風
팔이 저리니 종기가 생기려는가 肘痺宜生柳
두통이 심하니 머리는 쑥대같고 頭旋劇轉蓬
태연히 동요하지 않는 한 가지는 恬然不動處
가슴속에 깃든 맑은 정신뿐이네 虛白在胷中30)

이 시의 詩眼은 마지막 구절 ‘虛白’이다. ‘虛白’은 마음이 순정하고 욕심이 없는 깨끗한 마음이다. 백거이는 깨어질 듯 아픈 두통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이 깨끗한 마음이라고 하였다. 비움과 채움의 연속이 인생일 수 있다. 그러면 병중에는 비움과 채움을 조절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 두통에서 비움은 정신적 치유의 단계이다. 우리는 수많은 한문학 작품 중에 어떤 진단을 거쳐 환자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을 고를 수 있을까? 이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일정의 자격시험을 거쳐 한문치료사를 배양할 수도 있다.

백사 이항복은 조천록에서 “12월 13일 월사공이 누차 시를 지어 보이면서 화답을 요구하였는데, 나는 붓을 던져 버린 지 오래인지라 그것을 흉내 내기가 피곤하여 시로 거절하다.”라고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다.

만리 길 먼 행차에 질병이 많아서 萬里行多病
온갖 방도로 약을 써도 듣지를 않네 醫治百不宜
마음을 안정하는 데 좋은 약이 있으니 安心有上藥
조용히 앉아 시 읊는 걸 그만둬야겠네 靜坐廢吟詩31)


이 시에서도 문학테라피의 가능성이 진단된다. 백사는 온갖 병이 시의 스트레스에서 발생하는 것을 감지하고 시를 지을 때처럼 명상만 하고 시를 짖지 않는 것이 치료의 길이란 것을 감지하며 이것조차도 시로 지었다. 시와 치료 사이의 아이러니가 이중삼중으로 겹쳐져 있다. 백사는 시가 생활화 되어 있는 당시 사회에서 한사의 수작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이것을 증명해 주는 詩癖, 詩魔에 대한 이야기들이 각종 시화에 가득하다.

백사 이항복은 다음의 시에서 테라피의 가능성을 진단했다.

평안한지 여부는 묻지를 말라 莫問平安否
마음 한가하면 병 절로 낫는 것이니 身閒病自痊
마음도 없고 일도 없는 것이 無心亦無事
참으로 집에 있는 신선이라오 眞箇在家仙32)

백사는 한가함이 병을 절로 낫게 한다고 했다. 많은 시인들은 자연 속에서 한미청적, 청신쇄락, 충담소산의 미학을 즐기며 한적한 힐링을 즐겼다. 이것은 병의 치유와 예방을 위해서 좋은 효과를 내는 치료이다. 한문 테라피 속에는 쉼, 비움, 한가롭게 유유자적 하는 산책 등이 들어 있어 힐링의 효과를 높이는 테라피들이 다양한 장르를 통해서 나타난다.

구양수의 「病暑賦」는 혹독한 더위를 잊기 위해서는 성현의 고상한 행적을 생각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잡된 생각을 저버리라는 내용이다. 이런 작품들은 한문테라피를 가능하게 하고 촉진시킬 수가 있다.

성리학도 한문 테라피를 가능하게 한다. 계곡 장유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性情의 경우 또한 어찌 유독 그러하지 않겠는가. 대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해 준 것으로 말하면 환히 밝아 지극히 신령스럽고 티 없이 맑아 지극히 선한 것으로서 잘나거나 못나거나 간에 모두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기질에 구애받고 습관이 잘못 형성되면서 충동이 일어나고 감정이 앞서게 된 나머지 신령스러운 體性이 미혹스럽게 변화하고 선한 성품이 악하게 바뀌게 되고 마니, 이것 이 바로 선하지 않게 변화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성인께서 이를 걱정하시어 이런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베풀고 학문을 익히게 하면서 쇠를 녹여 틀 을 조형하고 도구를 사용해 나무를 재단하듯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것인데, 그 결과 어리석은 사람도 명철해지고 나약한 사람도 소신있게 행동하고 번잡스러운 사람도 평정을 되찾고 오염되었던 사람도 깨 끗해지고 한쪽에 치우쳤던 사람도 바른 위치에 서게 되고 이것 저것 뒤섞였던 사람도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보면, 이 세상 사람으로서 변화될 수 없는 자가 또한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 학문에 뜻을 두는 것[志學]으로부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는 경지[從心所欲不踰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어 보았으면 하는 선인[可欲之善]으로부터 성스러워 알 수 없는 신인 [聲而不可知之神]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학문을 계속 탐구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功效요 그 덕성이 단 계적으로 성취되는 것들이라 할 것이니, 교화하는 그 도가 그야말로 지극하다고 할 것이다.

아, 만물이 변화하는 것이나 사람의 生死와 壯老 같은 것은 天命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니 이는 사람들 이 정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性情이 왜곡되는 것이나 학문을 통해 변화되는 것으로 말하면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일 뿐 천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하루도 그 방면에 힘을 쓰려 하지 않고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있으니, 겉모습 만 사람일 따름이지 그 속마음은 이미 禽獸로 화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어찌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 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33)

계곡 장유의 이 이야기 속에는 지극히 맑고 바른 성정이 환경의 구애를 받아 신령스러운 성격이 좋지 않는 쪽으로 변화되고, 선한 성품이 악한 쪽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진단하고 있다. 이 진단을 활용하여 성인의 가르침으로 치유하면 그 결과는 “어리석은 사람도 명철해지고 나약한 사람도 소신 있게 행동하고 번잡스러운 사람도 평정을 되찾고 오염되었던 사람도 깨끗해지고 한쪽에 치우쳤던 사람도 바른 위치에 서게 되고 이것저것 뒤섞였던 사람도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보면, 이 세상 사람으로서 변화될 수 없는 자가 또한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극과 반응 그리고 변화 그리고 그 치유된 상태의 지속으로 치유되는 과정을 그려내는 테라피의 설명이 드러난다. 현대의 각박한 생활 속에 받은 트라우마를 이와 같이 치유되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은 테라피로서 대 성공이다. 이 이야기는 한문학의 치료적 기능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 글에는 인간의 성품이 악하게 변화되는 과정을 사유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이 함의되어 있다. 계곡은 성인의 학문인 유교경전을 통하여 인간이 선하게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성품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는 가정은 한문학 테라피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은 마음을 치유하고 지극한 선에 머물도록 지탱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선악을 주재하는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그리고 마음이란 무엇인가? 태극도설은 그에 대한 답이 유추될 수 있다. 성리학은 유교경전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성을 우주의 이치와 상호 융통하게 비유하여 심성이 선하고 온유한 상태로 보존되고 유지되도록 치료적 기능을 연구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성리학을 테라피의 입장에서 재조명해 본 것으로 성리학은 테라피로 볼 때 심성의 치유효과를 듬뿍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퇴계의 저작으로 알려진 《活人心法》은 명나라 때에 朱權이 지은 양생서적으로, 14세기 말에 간행되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일상을 고찰하다가 보면 활인심방이라는 것이 나온다. 퇴계는 20세 즈음에 주역에 너무 심취하여 건강을 해쳤다. 그 이후 늘 병약했다. 퇴계는 조선시대 병원이었던 활인서의 제조 직을 맡았던 적이 있었다. 이 시기에 具璿이라 불리는 명나라 주권이라는 사람이 지은 활인심방이라는 도가의 의서를 보게 된다. 이 책에 道家에서 유래한 養生法을 보고 스스로 운동법을 만들어 선비들에게 보급했던 것 같다.

연암 박지원은 활인 심방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가볍게 윗니와 아랫니를 36번 부딪치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뒷골을 24번 퉁긴다. 입 안에 고이게 한 침을 가볍게 양치질하듯이 부걱부걱하기를 36번 하면 이를 漱津이라 하여 맑은 물이 되는데, 이것을 3번에 나누어 꾸르륵 소리를 내며 삼켜서 丹田에 이르게 한다. 退溪 선생의 遺墨으로 전하는 明 나라 玄洲道人 涵虛子의 《活人心方》에 자세하다. ��열하일기��, 「渡江錄」 7월 6일 조를 보면 연암이 叩齒彈腦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어나 앉아서 이를 부딪으며 머리를 퉁기고 정신을 가다듬으니, 그제야 제법 상쾌해진다.

또 연암 박자원의 양반전에도 “이빨을 마주치고 머리 뒤를 손가락으로 퉁기며 침을 입 안에 머금고 가볍게 양치질하듯 한 뒤 삼키며”라는 구절이 나온다.34)

퇴계의 活人心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먼저 깊은 명상에 들어간다.

어두운 사랑방에서 웃통을 벗고 조금씩 움직인다. 눈을 감고, 허리를 똑바로 편 채, 혀를 말아 입천장에 살짝 대고,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천천히 내쉰다. 靜坐를 통해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우주의 기를 끌어들이는 단계다.

∙ 中和湯을 제조해 삼킨다.

중화탕은 수십 종의 정신적 약재를 잘 달여서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중화탕은 다음과 같은 ‘약재’가 필요하다.

思無邪(마음에 거짓을 없앨 것), 行好事(좋은 일을 행할 것), 莫欺心(마음에 속임이 없을 것),行方 便(필요한 방법을 잘 선택할 것), 守本分(자신의 직분에 맞게 할 것), 莫嫉妬(시기하고 샘내지 말 것), 除狡詐(간사하고 교활하지 말 것), 務誠實(성실히 행할 것), 順天道(하늘의 이치에 따를 것), 知命限(타고난 수명의 한계를 알 것), 淸心(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할 것), 寡慾(욕심을 줄일 것), 忍耐(잘 참고 견딜 것), 柔順(부드럽고 순할 것), 謙和(겸손하고 화목할 것),

지족(知足·만족함을 알 것), 廉謹(청렴하고 삼갈 것), 存仁(마음이 항상 어질 것), 節儉(아끼고 검소할 것), 處中(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조화할 것), 戒殺(살생을 경계할 것), 戒怒(성냄을 경계할 것), 戒暴(거칠게 행하지 말 것), 戒貪(탐욕을 경계할 것), 愼篤(신중히 생각하고 독실하게 행할 것), 知機(사물의 기틀을 알 것), 保愛(사랑을 견지할 것), 恬退(물러서야 할 때 담담히 물러날 것), 守靜(고요함을 지킬 것), 陰櫛(은연중에 덕이나 은혜를 쌓을 것)

∙ 和氣丸은 한 알 삼킨다.

和氣丸은 필요할 때 한 알씩 복용해 즉효를 보는 것으로 곧 ‘참을 忍’자를 말한다. ‘마음 위에 칼이 놓였으니 군자는 이로써 덕을 이룬다’는 것이다. 소인은 분함을 참지 못해 자신을 망친다.

∙ 治心한다.

욕심을 없애고 마음을 고요히 하면 앞일도 내다볼 수 있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세상일을 살필 수 있다. 마음은 물과 같아서 흔들리지 않으면 자연히 맑아져 그 밑바닥까지 환히 보인다.35) 이하는 신체에 대한 것이므로 생략한다.

퇴계의 활인심방은 명상을 이용한 테라피이다. 이 속에 나오는 중화탕이니 회기환은 모두 마음속 에서 만들어낸 무형의 치료약이다. 이것은 퇴계 당시의 테라피이다. 이것은 오늘날 테라피로서 그대로 재현되어 현재 곳곳에서 심성수련의 일 방편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서 소쇄원, 도산, 등의 원림 공간과 아름답고 한적한 장소엔 정자가 있으며 그 속엔 어김없 이 기문과 시들이 들어차서 웰빙과 힐링을 촉진시킨다. 한국의 수많은 정원과 누각들은 웰빙과 힐링의 장소이자, 테라피의 현장이었다.

한문학은 다양한 테라피의 유형이 존재한다.

“참을 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격언 속에는 한문 단문의 테라피가 들어 있다. 한문에서 생산된 명언명구 속에는 한문학 테라피가 함의되어 있을 수 있다. 고사성어도 한문학 테라피로 활용이 가능하다. 한자는 그 만들어진 연원을 따져 올라가다가 보면 그 옛날의 풍속을 접하게 되고 그 원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한자는 한글자가 예술이고 그림이며, 한 글자가 철학이요, 역사요 미학이다. 우리는 한자에서도 테라피의 기능을 찾을 수 있다. 한자는 문자학의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테라피의 가능성을 발견해 낼 수가 있다. 이것은 한자테라피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글자의 미학을 찾아가면서 서예와 결합되면서 한자테라피 서예테라피로 그 가능성을 충분 히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로서 병통을 치유할 수 있다. 시의 글자 한자가 수명을 단축시켰다는 시 참설, 글자 한자에 기운이 약하고 강하다는 성조의 미학 속에 테라피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고사성어와 한문 격언 속에도 우리는 테라피의 기능이 함의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한문은 테라피 입장에서 보면, 주역, 풍수, 작명, 오방색, 등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미세하 작용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테라피도 이미 선행되고 있었다. 한문학 테라피는 과학도 명할 수 없는 정신세계가 존재함을 우리는 감지한다. 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한문학은 라피로서 현재적의미를 조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외에도 한문학은 다양한 장르에서 테라피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 마음이 울적하면 한문을 읽어라. 골치가 아파도 한문을 읽어라. 한문을 읽으면 우아해지고, 마음이 편안해 지고, 행복해 진다. 이것이 한문테라피의 가능성 을 시사한다.

Ⅳ. 결론

이상으로 인성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문교육의 일환으로 한문테라피의 가능성에 대해 진단해 보았다. 문학을 비롯한 각종 예술 테라피 연구는 그 역사가 일천하며 거의 최근에 와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학문이다. 문학테라피에 대한 우리나라의 연구 실정이 서구에 비해 아직도 열악한 상황인 점을 감안한다면, 한문학테라피도 이 분야를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한문은 지금까지 그 기능적인 면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문학은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이 강한 위대한 문학이다. 따라서 한문학은 기능적인 면에서 문학테라피에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지금 현재 각종의 다양한 테라피 연구는 아직 초보 단계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학을 비롯한 각종의 예술테라피도 미완성 단계에서 다양한 테라피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단계이다. 문학을 비롯한 각종 예술을 활용한 테라피는 아직도 분명한 치료적 효과를 나타내거나 임상적 실험을 통한 치료적 효과에 대한 입증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현대의 각박한 삶은 수많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낳고 있다. 현대는 이들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문학을 비롯한 예술 테라피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한문학은 테라피의 深淵이자 寶庫이다. 한문학은 그 특성상 다양한 테라피와 접목될 수 있으며, 각종 테라피와 긴밀한 연관성을 지닐 수 있다. 한문학의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문학작품은 현대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한문학의 현재적의미를 테라피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한문학 테라피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우선 한문학을 바탕으로 테라피의 개념과 정의를 보완하고 한문학 테라피의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한문학 테라피를 활용한 치유의 효과를 입증하는데 총력을 기우려야 한다. 어떤 테라피 연구도 마찬가지지만 그 테라피의 의료적 효과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환자의 트라우마 성격을 진단한 후 그 환자에게 적당한 치료의 한문학 작품을 골라서 치료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 보인다. 한문학 테라피는 한문학 작품을 철저히 분석하고 비평하여 그 작품의 치료적 효과를 검증한 이후에 테라피에 활용하여야 한다. 한문학 테라피는 한문학 작품을 심미적인 비평과 생태적 비평을 바탕으로 고도의 전문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문학을 활용한 테라피에 필요한 전문적인 교육을 이수시키고 일정 기간의 실험을 거쳐서 한문 테라피 자격증 같은 것을 고려하여 전문성을 제고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문은 번역을 통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치원, 초등학생을 위한 한문학 테라피와, 중고등 학생을 위한 한문학 테라피, 그리고 일반 대중을 위한 웰빙, 힐링의 목적으로 한문학 테라피의 활용 방안를 확대하는 쪽으로 연구영역을 넓혀 나아가야 될 것으로 사료된다.

한문학은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이고 사장된 문학으로 케케묵은 사고에 젖어서 헤어나지 못하는 호고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대에도 병든 사회를 치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대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소중한 치료적 기능이 함의되어 있는 귀중한 치료제로서 한문학 테라피는 현대에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문 테라피의 전망은 어떠한가?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관공서, 기업체 등의 집단교육, 각종학교 학생들의 정신건강 교육, 인성치료 등을 위해 한문 테라피는 좋은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한문 테라피의 가능성은 다른 테라피에 비해 더욱 긍정적이고 고무적으로 보인다. 한문학 테라피의 다양한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확대함으로서 한문학 테라피는 새로운 연구 분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문테라피는 현대생활에 필요한 문학테라피로서, 그리고 각종 예술테라피로서 그 치료적 기능 을 함의하고 있는 자료들이 풍부하다. 한문테라피는 문학 테라피를 비롯한 각종 테라피들과 접목하 면서 더욱더 보완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한문테라피의 지평이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Figure

Table

Reference

  1. 정운채(1999), 〈시화에 나타난 문학의 치료적 효과와 문학치료학을 위한 전망〉, 󰡔고전문학과 교육》 제1집,
  2. 변학수, 채연숙, 김춘경(2007), 〈문학치료와 현대인의 정신병리 : 인격 장애의 문학치료적 중재〉, 󰡔뷔히너와현대문학》.제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