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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363(Print)
ISSN : 2465-8138(Online)
Han-Character and Classical written language Education No.44 pp.177-197
DOI : https://doi.org/10.15670/HACE.2018.44.7.177

Traditional Value in and Its Educational Implications

Ryu, Jun Kyung*
* Sungshin Women’s Univ. / E-mail : newjune@sungshin.ac.kr
2018년 04월 10일 2018년 05월 04일 2018년 05월 25일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meaning of traditional values, especially focusing on viewpoint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出處觀, in written by YeonAhm Park Jiwon燕巖 朴趾源(1737~1805). Viewpoint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 the core ethics of the intellectuals of East Asia emerged based on the hierarchical interests of the intellectuals. However, due to its public nature, it became an important criterion for determining the life of intellectuals in East Asia. Particularly, in order to thoroughly stick by viewpoint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it may be difficult to maintain life, so viewpoint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is also an issue of existential decision related to survival.
The life of Heosaeng許生, shaped in , was a thorough life in viewpoint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While Heosaeng is highly praised for having substantial capabilities that are appropriate for a changing age, but it is also pointed out that he is not directly involved in real reform. However, this aspect of him is a thoroughness in traditional values - viewpoint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Because he was thorough in viewpoint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the morality of the individual could not be undermined by his interests, and his ability could not be used as a tool of power. Furthermore, he was able to criticize the unrighteous real world. In the reality that profit and utility become the standard of all values, the aspect of Heosaeng who was thorough in viewpoint of taking and leaving government posts needs to be paid more attention in the Chinese classics education.

<허생전>에 구현된 전통적 가치관과 그 교육적 의미 - 출처의 의의를 통해 본 허생의 형상 -

류준경**
** 성신여자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초록

본 논문은 출처관을 중심으로 <허생전>에 구현된 전통적 가치관의 의미를 검토한 것이다. 동아시아 유가지식인의 핵심적 윤리관인 출처관은 기본적으로는 士階層의 계층적 이익을 바탕으로 출현하 였지만 그 내용의 公共的 성격으로 인해 동아시아 유가지식인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다. 특히 출처의 의리에 철저하기 위해서는 생활의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었기에, 출처관은 한 편으로 생존과 관련된 실존적 결단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허생전>에 형상화된 허생의 삶은 출처의 의리에 철저한 삶이었다. 허생은 변화한 시대에 걸맞은 실질적인 능력을 갖춘 점에서 높이 평가되지만, 한편으로 현실 개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하지만 허생의 이러한 면모는 전통적 가치관인 출처관에 철저한 면모이다. 그는 출처의 의리에 철저하였기에 개인의 도덕성이 이익 때문에 훼손되지 않을 수 있었고, 개인의 능력이 권력의 도구로 활용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아가 불의한 현실 세계를 비판할 수 있었다. 이익과 효용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문과 교육은 무엇보다도 출처의 의리에 철저한 허생의 면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Ⅰ. 들어가며

2015 개정 한문과 교육과정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한문과 인성” 영역의 설정이다. 이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에서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주요한 목표로 설정하며 “핵심역량”을 강조하였기에, 한문과 교육과정의 내용체계에 새로운 영역을 추가한 것이다.1) 물론 이전 교육과정에서부터 “건전한 가치관과 바림직한 인성”을 기른다는 내용이 한문과 교육과정의 ‘성격’ 부분에 기술되어 있었기에, “한문과 인성” 영역의 추가가 외부의 논리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건전한 가치관”과 “바람직한 인성”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 교육과정의 성격 진술에서 남은 것일 뿐, 현재 한문교육계에서 합의된 의견이라고 보기 어렵다. 교육 당국이 제시하는 교육 목표에 “건전한 가치관”, “바람직한 인성” 등이 들어갈 경우 이는 기존 가치를 강요하는 것이고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교육 당국과 피교육자 사이에는 이미 위계와 권력이 작동되고 있기에 “건전”하고 “바람직한” ‘가치’는 개인이 주체적으로 판단한 가치가 아니라 위계에 의해 강요되는 ‘가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치관” 역시 마찬가지의 위험이 따른다. 이른바 “전통적 가치관”은 이미 낡아버려 현실적으로 통용되기 어렵지만 여전히 강고한 힘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전통적 가치관”으로 ‘忠’, ‘孝’, ‘禮’, ‘仁義’, ‘誠實’, ‘責任’ 등이 강조된다면 그것은 학생들로서는 ‘족쇄’로 이해할 가능성이 크다. ‘가치관’은 무엇보다 가치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구체적 맥락에서의 실천이 중요한데, 단순히 덕목으로만 강요될 경우,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억압적인 규칙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통적 가치관’이 한문교육의 중요한 교육 내용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문교육계가 노력해야 할 것은 “낡아버리고 의미 없는 과거의 가치” 혹은 “의미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리타분한 과거의 가치”라는 기존 관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무엇보다도 고정된 의미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사유와 실천이자 그 근거인 ‘가치’임을 드러내어야 한다. 관념적인 덕목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유를 통해 선택하고 실천하는 ‘가치’임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시대적인 맥락까지 고려하여 전통으로서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 검토할 것은 <許生傳>에 구현된 전통적 가치관이다.

1) 교육부(2015)

<許生傳>은 燕巖 朴趾源(1737~1805)의 새로운 士意識이 투영된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데2), 본고에서는 이를 전통적인 윤리관인 ‘出處觀’의 맥락에서 그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본고에서 <허생전>을 선택하여, 이를 출처관의 맥락에서 검토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허생전>은 한문교과서에 가장 많이 수록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작품이기에 보다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고, 아울러 교육적인 활용도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허생전>은 한문 교과서만이 아니라 국어과 교과서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제재이다. 특히 국어과 교과서의 경우는 번역문이기는 하지만 작품 전문이 수록되는 경우가 많고, 한문과에 비해 수업시수도 많기에 보다 작품 내용에 깊이 접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판단으로는 국어 교과의 수업에서는 한문문화의 전통적 가치관인 출처관의 맥락에서 <허생전>을 검토하지 않는다. 사실 출처관은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한문문화권의 핵심적인 윤리관임에도 교육현장에서는 조금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국어뿐 아니라 역사, 윤리 등 타 교과에서도 출처관이 주요하게 교육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문과에서 출처관을 보다 집중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특히 근래에 강조되고 있는 한문과 문화영역의 주요한 내용으로 다룰 수 있다. 무엇보다 출처관은 한문문화의 핵심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생전>의 경우는 출처관의 맥락에서 작품을 읽어야 작품이 구현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작품 전문을 읽을 수 있는 국어 교과와 한문문화적 맥락이 보다 강조되는 한문과가 동일 작품을 각 교과의 특성을 반영하여 접근한다면 학생들도 보다 입체적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출처관은 유교 지식인의 핵심적 윤리관임에도 윤리 교과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기에, 구체적 작품과 함께 출처관을 공부함으로써 전통 윤리에 대해 보다 폭넓고 심화된 이해도 가능할 것이다. 동시에 역사 공부에서 조선시대 선비의 선택, 특히 士禍 이후 선비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출처관을 중심으로 <허생전>을 검토하는 작업은 한문과만이 아니라 범교과적인 맥락에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2) 이 점은 이우성(1957)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점으로 관련 연구만으로 별도의 연구사가 집필될 정도이기에 관련 연구를 일일이 거론하지는 않는다.

Ⅱ. 出處觀의 논리 구조와 出處의 어려움

1. 출처관 출현 배경 – 출처관의 계층적 성격

“出處”는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핵심적인 윤리인데, 出處의 문제는 춘추전국시대 ‘士’계층이 본격적으로 출현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士’는 춘추시대 최말단 지배층으로 직접생산자인 庶人과 구별되는 존재였는데, 전국시대 생산력의 발달로 계층 분화가 일어나자 상층 지배층인 卿大夫와 구별되는 새로운 治者로 격상하게 된다. 새로운 治者로 등장한 ‘士’계층이 당시 군주로부터 독자적인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한 논리로 마련된 것이 바로 ‘出處’의 논리였던 것이다.

새로운 治者인 ‘士’階層은 기본적으로 君權의 절대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예속을 벗어나기 위해 군권을 제약하는 논리도 모색한다. 세상의 공공성을 강조(天下爲公)함으로써 군주의 권력독점과 자의적 권력 행사를 반대하며 동시에 군주를 포함한 지배계급 전체의 책임의식과 자기절제의 논리를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 사계층이 주장하는 愛民, 民本, 爲民의 본질은 실제적으로는 사계층의 권익 확보를 위한 君主權의 제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춘추전국시대 사계층은 기본적으로 관료 이외의 길이 없었고, 관료이기에 군주에게 예속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독자적인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군주의 정치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군주에게 예속된 존재(被治者의 입장)를 극복할 수 있는 논리를 마련해야 했다. 이때 마련된 사유가 바로 ‘出處의 논리’이다. 출처의 논리의 핵심은 士人이 出仕를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군주와 義가 합치될 때만 출사하고, 이때 군주는 士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예우를 해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동시에 이때 士는 하급관료와 구별되는 존재로 포괄적 업무를 담당하는 존재로 설정한다. 기술이나 기초적인 행정을 담당하는 기능적인 존재가 아니라 포괄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존재로, 군주와 共治者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出處’의 논리는 그 출발에 있어서는 군주체제 아래에서 특권적인 士人 관료의 계층적 이익을 바탕으로 마련된 논리였으며, 동시에 이들의 임무는 구체적인 행정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업무를 지향하였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출처의 논리는 사계층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한 논리였지만, 한편으로 사계층의 보편적 도덕윤리로 자리매김 된다. 계층적 이익을 바탕으로 제출된 논리였지만, 한 개인이 도구적 존재로 떨어지지 않는 윤리적 주체가 되는 핵심적인 도덕으로 논리를 구축하였고, 이후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한문문명권의 핵심적인 도덕윤리로 작용한 것이다. 이는 군권의 절대성을 제약하기 위해 모색된 爲民, 愛民, 民本이 지닌 공공성 때문이었다. ‘나아감(進/出)’과 ‘물러남(退/處)’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마련된 행동양식이고, 공공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단순히 계층적 이해관계로 떨어지지 않으면서 강고한 윤리관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나아감’과 ‘물러남’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행위가 모두 정당한 윤리행위로 제시되기에, 하나를 배제하면서도 동시에 그 하나를 수용해야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 인해 항상 깊이 있는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윤리적 결단의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모순성을 중심으로 진퇴의 논리, 출처의 논리를 검토하도록 한다.

 

2. 나아감[出]과 물러남[處]의 역설적 구조

동아시아 세계는 서양 세계와 다르게 기본적으로 현세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현세주의적 세계관을 지닌 동아시아 지식인은 현실세계에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치가 神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기에 현실에서 가치를 구현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유가지식인[士]의 윤리적인 목표는 세상에 ‘道義’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현실 세계를 긍정하고 그 세계를 도의가 실현되는 문화 세계가 되게 하는 것이 유가 지식인으로서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인 것이다. 이는 大人의 學인 『大學』에서 끝내 구현해야 하는 마지막 목표를 ‘平天下’, 곧 仁義가 실현되는 평화로운 세상을 제시하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지식인은 세상에 道義(公共善)를 구현해야 할 책임을 지닌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식인이 세상에 공공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나아가야’(出/進)한다. 현세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세상에 공공선을 실현해야만 하는 지식인은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동아시아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행동규범은 나아감이다. ‘立身揚名’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士(선비)’인 존재가 공공선의 실현을 위하여 나아갈[出仕] 때, 그 나아감이 진정 공공선의 실현을 위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 실현 여부는 나아가 실천한 행위가 완료되었을 때에만 확인 가능하다. ‘선비’가 공공의 영역[朝廷]에서 실천한 행적과 그 결과를 확인해야만 그의 나아감에 대해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도덕적 행위 판단의 잣대가 되기 어렵다. 어떤 행위가 완료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나아간 이후의 성취가 아니라 ‘나아감’의 행위 그 자체가 윤리적이기 위해서는 ‘나아감’에 있어서 공공성[公]에 어긋나는 ‘사사로움[私]’이 없어야 한다. 이때 ‘사사로움’은 두 방향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君王으로 대표되는 권력의 ‘사사로움’이고, 다른 하나는 출사하는 주체[出仕者]의 ‘사사로움’이다. 아무리 공공선을 위해 출사하였다고 하더라도 모든 정치의 최종 결정권자가 君王인 이상, 출사자가 추구하는 공공선은 군왕의 동의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군왕의 ‘사사로움(私心)’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이상, 出仕者는 출사하지 않아야 한다. 신하이면서 동시에 신하가 아닌 자리[不臣之臣], 임금의 신하이지만 동시에 임금의 스승[君師]일 수 있는 자리가 이념적이라도 충족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의 사사로움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출사자 자신에게도 역시 私心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출사를 결정하는 개인의 행위는 결국 ‘私心’일 수밖에 없다. 모든 개인의 결정에서 논리적으로 볼 때, 개인의 ‘사사로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올바른 ‘士’라면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하게 된다. 개인의 결정인 한, 개인의 사사로움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출사하여 세상에 도의를 실현해야만 하는 존재가 선비임에도 나아가지 않는[물러난] 선비(‘處士’)가 더욱 칭송되는 구도가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물러남[退] 역시 私心일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 물러나는 경우야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세상의 시비에 얽매이지 않거나 자유롭기 위해 물러나는 것도 ‘私心’일 수 있다. 나아감의 사사로움이 문제라면, 물러남의 사사로움 역시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권력과 명예에 대한 사사로움이 없다고 할지라도, 공공선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로움만 추구한다면 이 역시 군자의 처신으로는 올바르지 않다는 말이다. 유가철학에서 도가적인 면모를 비판하는 ‘潔身亂倫’이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물러남이란 개인의 자유를 위한 물러남이 아니라 나아가야 하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물러남이어야 할 것이다. 물러남의 행위 속에 나아감의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듯이 전통적인 출처관은 단순히 出과 處(혹은 進과 退)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出處의 관련성, 상호의존성에 관한 논의이다. 나아감의 동력은 물러남이어야 하고 물러남의 동력은 나아감이어야 하는, 주체의 도덕적 행위는 항상 반대의 선택으로부터 동력을 얻는 구조여야 하는 것이다. 개인에게 ‘出’과 ‘處’의 모순적 관계를 인지하고, 이를 동시적으로 구현할 것을 요구하는 엄정한 윤리관이라고 할 것이다.

 

3. 출처의 어려움

일찍이 南冥 曺植(1501~1572)은 “선비의 大節은 오직 출처 한 가지 일에 달려있을 뿐이다.(士君子大節, 唯在出處一事而已)”라고 하였다. 하지만 出處에서 ‘處’를 유지하려면 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士’는 仕宦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경제적인 기반이 없다면 ‘處’는 굶주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정권에 협력할 수 없어 출사하지 않거나, 자신의 출사에 걸맞은 조건이 구비되지 않아 계속해서 ‘處’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선비에게 ‘儉約’의 윤리가 특별히 강조되는 것은 한편으로 선비가 도덕적 주체로서 ‘處’를 유지하기 위한 여건과도 관계된다. 하지만 생업보다 독서에 힘써야만 하는 선비에게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이 없다면 검약만으로 ‘'處'’를 선택하며 생활할 수 없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處’의 윤리를 지속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 물러남을 실천했던 伯夷를 칭송하고, ‘恒産’이 없어도 ‘恒心’이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선비라고는 하지만 경제적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處’를 실천하는 것은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모형에 가깝다. 조선시대 處士의 전형으로 언급되는 退溪와 南冥 등이 끝내 출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근거는 한편으로 그들의 경제력 덕택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비록 사치하지 않고 검약한 삶을 실천하였지만, 최소한의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었기에 ‘處’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념적으로 물러남[處]의 도덕이 더욱 숭상되지만, 실제 그 도덕을 실천하는 데에는 보다 큰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處士의 윤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실천을 넘어서는 실존의 실천인 것이다. 오직 군자만이 할 수 있는 실천인 것이다.

Ⅲ. 出處觀을 통해 본 許生의 초상 – 許生의 도덕군자적 면모

<허생전>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방면에서 축적되어 이제 새롭게 이야기될 만한 것이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이 중 허생의 인물 형상을 주목한 연구는 대략 두 경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허생의 실학사상에 바탕을 둔 經世濟民의 역량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주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비 허생이 보이는 태도와 가치관을 주목한 것이다. 전자가 특히 허생의 능력에 주목한 것이라면, 후자는 허생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주목한 것이라 하겠다. 특히 후자의 허생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주목한 경우, 경제에 대한 높은 식견을 갖추면서도 물질적 가치에 종속되지 않는 면모를 강조하며, 동시에 이전 시기 선비와 다른 새로운 선비의 형상을 부각한다. 그런데 허생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주목할 경우, 오히려 전통적 가치관을 더욱 엄격하게 유지하는 면모도 확인된다. 전통적인 윤리관을 보다 근본적으로 실천하려는 면모가 확인되는 것이다. 선비의 출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허생전>의 허생 형상은 한편으로 異人적인 면모가 확인되기도 한다. 세상의 원리와 법칙을 모두 알고 있지만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면모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변부자가 만금을 빌려줄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면모나, 백만 냥을 버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예정된 것인 양 행동하는 모습 등은 세상 이면의 법칙을 다 꿰었지만 실제 현실에는 관여하지 않는 異人의 전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異人적인 면모와 다르게 허생은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부끄러움은 모든 것을 알지만 초월한 이인의 면모와는 거리가 있다. 이제 이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허생의 부끄러움은 변부자에게 10만 냥을 돌려주는 장면에 나타난다.

 

 “나를 기억하겠소?”

변씨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대의 얼굴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을 보니 혹 만 냥을 털어먹지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말하였다.

“재물로 얼굴이 번드르르해지는 일이야 당신들의 일일 뿐이오. 萬金의 돈이 어찌 道를 살찌게 하겠소?”

이에 은 십만 냥을 변씨에게 주며 말했다.

내가 순간의 굶주림을 참지 못하여 독서를 마치지 못하였으니 그대 萬金의 돈에 부끄러울 뿐이오.

변씨가 깜짝 놀라 일어나 절하며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다고 하였다. 허생이 크게 성을 내며 말했다.

“당신은 어찌하여 나를 장사치로 보시오!”

하고 옷자락을 뿌리치고 가버렸다.3)

3) 朴趾源, 《燕巖集》, <熱河日記·玉匣夜話>, 韓國文集叢刊 권 252. 往見卞氏曰: “君記我乎?” 卞氏驚曰: “子之容色, 不少瘳, 得無敗萬金乎?” 許生笑曰: “以財粹面, 君輩事耳. 萬金何肥於道哉?” 於是以銀十萬付卞氏曰: “吾不耐一朝之饑, 未竟讀書, 慙君萬金.” 卞氏大驚, 起拜辭謝, 願受什一之利. 許生大怒曰: “君何以賈竪視我!” 拂衣而去. (이하 <허생전>을 인용할 때에는 동일한 출처이기에 일일이 밝히지 않는다.)

 

여기서 허생은 자신이 장사치가 아니라 도를 추구하는 선비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동시에 굶주림 때문에 10년 기한의 독서를 마치지 못하고 만 냥의 돈을 꾼 사실이 부끄럽다고 하였다. 여기서 부끄러운 이유는 굶주림 때문에 돈을 꾼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서를 마치지 못한 데 있다. 물론 허생이 10년 기한의 독서를 마치지 못하고 변부자에게 가 만냥의 돈을 꾼 것이, 표면적으로는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아내의 울부짖음 때문인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변부자로부터 돈을 꾼 뒤 허생은 아내의 생계를 돌보지 않았다. 곧 아내(생계)를 위하여 돈을 꾼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허생은 생계 때문에 돈을 꾸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허생의 부끄러움은 독서를 마치지 못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허생은 왜 10년 기한의 독서를 마치지 못했을까?

허생은 변부자에게 돈을 꾸면서 “조그맣게 시험해 볼 게 있으니[有所小試] 당신에게 만금의 돈을 꾸고 싶소.”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돈을 꾼 이유가 ‘조그마한 시험[小試]’ 때문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허생은 그 돈으로 과일과 말총을 사재기하여 돈을 불리고, 다시 도적들을 이끌고 무인도를 개간하여 나라의 화를 없애면서 동시에 도적의 삶을 보장하고, 나아가 長崎島의 기근을 진휼한 국제적 교역을 통해 100만 냥을 모은다. 이상의 일들을 마치고서 허생은 “이제 나의 조그마한 시험[小試]이 끝났구나!”라고 말한다. 거듭 제시된 ‘小試’라는 표현으로 보아 허생이 10년 기한의 독서를 마치지 못하고 떨쳐 나온 핵심적인 이유는 ‘작은 시험[小試]’을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허생은 원금의 10배나 되게 돈을 갚았고, 작은 시험이 무사히 마쳤음에도 왜 과거에 작은 시험을 위해 돈을 빌린 사실을 부끄럽다고 하였을까? 돈을 빌릴 때 그 당당하던 모습에도 불구하고.

<허생전>의 허생 형상에서 가장 주목된 점은 그의 經世濟民의 능력이었다. 구체적으로 조선 상업의 낙후성과 그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독점의 폐해를 시험하였고, 도적들이 창궐하는 나라의 근심을 없애면서 동시에 도적의 삶을 보장하였으며, 나아가 국제무역을 통해 국가 간의 상호이익을 꾀한 점 등에서 그의 놀라운 經世濟民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실현 과정이 바로 허생의 ‘작은 시험[小試]’ 과정이다. 그리고 허생은 바로 이러한 ‘小試’ - 자신의 능력 실현 과정을 부끄럽게 여겼다. 표면적으로는 굶주림 때문이라고 언급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신의 능력 실현의 과정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 시험하여 현실의 여건을 개선하였음에도 그 자신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러한 허생의 부끄러움은 선비의 중요한 윤리규범인 출처관에 비추어볼 때 그 실질적인 의미가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선비의 출처는 성리학에서 정리된 ‘修己治人’의 모델을 바탕으로 한다. 선비는 세상에 나아가 도의를 실현하기[治人]에 앞서 學習을 통해 도덕성을 배양[修己]해야 한다. 허생의 공부는 바로 治人을 위한 修己 공부인 것이다. 그런데 허생의 뛰어난 면모는 ‘修己’가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을 함양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도덕성[公共善]을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능력을 기른 데에 있었다. 선행연구에서 허생을 문제해결형 독서인으로 명명한 것은4)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고답적인 공부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현실적인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이미 많은 독서가 있었을 것이지만, 10년이라는 기한을 다시금 설정하여 독서를 진행한 점에서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인 공부를 추구하는 허생의 노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실질적이며 부단한 공부의 과정에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비는 출사를 위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출사를 위해 노력하지는 않아야 한다. 선비의 공부는 공공의 -자신을 포함하여- 도덕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결코 자신의 출세, 명예를 위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 출사하려 노력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출세,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 스스로 티끌만한 사심도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 아무런 사심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한번 사심이 깃든다면 그 끝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뛰어난 능력이 공공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익을 위한 것이 되고 말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비는 출사를 위해 노력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권력[君王]의 부름에도 쉽게 응하지도 말아야 한다.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권력의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력이 선비를 도구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선비의 입장에서는 선비를 올바르게 대우하여 부를 때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맹자에서 언급되었듯이, 선비를 올바른 방식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결코 나아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5) 

4) 김영(1988)
5) 《孟子》 “孔子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

허생의 아픔은 여기에 있다. 그는 公共善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10년 기한의 독서는 바로 세상에 도의를 실현하기 위한 능력을 지속적으로 기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나아갈 수가 없다. 적극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면 공공선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 실현을 위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크고, 동시에 억지로 나아간다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무용한 존재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은 조성기와 유형원 같은 인물도 쓰이지 않아 ‘무용한 존재’로 남았기에,6) 나아가도 무용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성기도 유형원도 쓰이지 않는 현실이라면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뛰어난 선비가 바닷가에 배회하고, 늙어죽는 세상은 도의가 없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은 도의가 없는 세상이기에 군자는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도의가 실현되지 않는 세상임을 몸으로 증명해야 한다.7) 현실의 부도덕성을 출사의 거부를 통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나아가지 않음/물러남의 도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는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는 쓰일지 모를 상황을 대비하며 묵묵히 노력하고 기다려야 한다.8) 허생이 지속적으로 독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허생의 부끄러움은 이와 관련된다. 자신의 공부를 어떻게라도 증명해 보고 싶었던 욕망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허생이지만9) 어설픈 출사 같은 ‘小試’가 자신에게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小試’는 출사와 무관하게 자신 공부의 정당성을 시험하고픈 욕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험하고픈 사사로운 욕망[私心] 역시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허생 스스로 부끄러움을 자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허생이 출처의 의리에 철저하다는 사실이다. 털끝만한 사사로움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허생의 도덕군자적 면모가 확인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허생은 끝까지 義理를 고수하는, 명분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인물인 것이다.

동시에 허생은 실질적 이익(실용)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나아감[出]’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도덕[의리]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생은 실질적 효험의 측면에서 자신의 능력이 실현되지 않을 수 있음도 자각하고 있었다. 의리를 지키지 않을 경우, 실질적 효험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생은 ‘小試’의 성공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가능하지 않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점을 보다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공공선을 실현할 만한 능력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출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6) 趙聖期(拙修齋)可使敵國, 而老死布褐 ; 柳馨遠(磻溪居士)足繼軍食, 而逍遙海曲. 今之謀國政者, 可知已. 吾善賈者也, 其銀足以市九王之頭, 然投之海中而來者, 無所可用故耳.
7) 《論語》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8) 이러한 상황은 자공과 공자의 대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論語》. “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 “
9) 변부자는 허생을 보고 “不待物而自足者”라고 평하였다.

‘小試’를 끝내고 돌아온 뒤 허생은 다시 가난한 독서인의 삶을 유지하며 변부자와 한층 가깝게 지냈다. 몇 년 후 변부자는 허생에게 어떻게 자신이 萬金을 꿔줄지 알았냐고 물었다. 이에 허생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꼭 그대가 빌려줄 것은 아니었소. 하지만 만금이 있는 자라면 빌려주지 않을 자가 없었을 것이오. 나 스스로는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여겼소. 하지만 운명은 하늘의 뜻이니 누가 빌려줄지 어떻게 알겠소. 따라서 나를 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서 반드시 더욱더 부유하게 되었을 것이오. 이는 하늘의 뜻이니 어찌 주지 않을 수 있겠소. 내가 만금을 얻고 나서는 부자의 복에 의지하여 운용하였으니 할 때마다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오. 만약 내가 사사로이 나의 것으로 하였다면 成敗를 또한 알 수 없었을 것이오.10)

 

허생 스스로는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능력이 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허생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성공의 조건은 만금을 지닐 만한 능력을 지닌 자의 福[運命]이다. 자신이 백만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만금을 지닌 부자의 복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복을 지닌 부자의 운명에 의지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능력 실현 여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춘 자라고 할지라도 ‘부자의 복’에 해당되는 ‘군주의 복’에 의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써 줄 수 있는 군주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허생이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가 결코 출사하지 않은 이유는 출처의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출사자가 능력을 실현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결코 능력 실현 여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개인의 능력만으로 결코 좋은 결과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 인식 또한 작용하였기에 출사를 거부하였던 것이다.

위의 대화에 이어지는 대화에서 출사의 문제가 보다 본격적으로 거론된다. 허생의 출처관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변부자는 지금은 청나라에 치욕을 갚아야 하는데, “당신은 어찌 그런 재주를 지녔음에도 스스로 고생스럽게 어둠에 파묻혀 일생을 마치려하십니까?” 라고 묻는다. 이 부분에서 허생과 변부자의 관계에서 허생과 권력(군왕)과의 관계로 문제가 변화한다.

허생은 자신이 치욕을 갚을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런 능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능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결코 등용되지 않는 현실적 상황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허생의 언표는 등용되지 않을 현실을 말한 듯하지만, 실제적인 함의는 불러준다고 할지라도 출사할 의도조차 없다는 점을 말한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은 바로 이어지는 이른바 ‘時事三難’ 부분에서 확인된다.

10) 不必君與我也, 能有萬金者, 莫不與也. 吾自料吾才足以致百萬, 然命則在天, 吾何能知之? 故能用我者, 有福者也, 必富益富, 天所命也, 安得不與? 旣得萬金, 憑其福而行, 故動輒有成. 若吾私自與, 則成敗亦未可知也.

인재를 찾던 御營大將 李浣은 변부자의 소개로 허생을 만나게 된다. 허생은 거만한 태도로 이완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느냐”

“대장이오.”

“대장이면 너는 나라의 신임 받는 신하로군. 너는 내가 응당 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할 터이니, 너는 조정에 청하여 삼고초려하게 할 수 있겠느냐?”11)

 

여기서 와룡선생은 바로 허생 자신과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러한 질문은 조정의 삼고초려가 있어야만 자신이 출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앞서 출처의 논리에서 살펴보았듯이 선비는 권력자의 도구로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 공공선을 위해 출사하는 선비가 군왕(권력)의 사심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허생이 요구하는 삼고초려는 바로 권력자의 사심이 아니라 공공선을 위한 것임을 보장하는 형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형식이 갖추어졌을 때에만 출사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미 조성기와 유형원 같은 이가 버려지는 不義한 세상이기에 허생은 나아가지 않아야만[處]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면,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하다.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을 조건, 그것이 바로 삼고초려인 것이다. 출처의 의리를 엄정하게 실천하는 허생의 면모가 여기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11) “汝今何官?” 曰: “大將.” 許生曰: “然則汝乃國之信臣. 我當薦臥龍先生, 汝能請于朝, 三顧草廬乎?”

여기서 아울러 주목할 점은 이완의 형상이다. 변부자와 허생은 수년 동안 벗과 같이 情誼가 두터워져 서로 “그대/자네[君, 子]”라고 호칭하며, 터놓고 말을 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변부자는 이완에 대해서는 상대를 “公”이라 높이고 자신은 “小人”을 낮춘다. 뚜렷한 위계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높은 지위의 이완이 일개 한미한 서생을 초빙하기 위해 직접 찾아간다. 그는 허생의 냉대로 밖에서 이슬을 맞으면서도 묵묵히 허생의 부름을 기다렸고, 겨우 방으로 들어갔지만 허생은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았다. 한미한 서생의 냉대에 당황하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이완은 “나라에서 뛰어난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며 허생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고관대작인 이완에게 허생은 손을 휘두르며 말을 막고 “너[汝]”라고 부르기까지 하며 냉대하며, 조정 전체가 삼고초려의 형식을 갖추고 자신을 초빙할 수 있는지 질문하였다.12) 변부자와 터놓고 말을 하는 한미한 서생이 예의도 갖추지 않고 하대하며 묻는 이런 질문에도, 이완은 화를 내기는커녕 한참동안 머리를 숙이고 숙고한 뒤에야 어렵다며 다음 방안을 묻는다.13) 고관의 지위임에도 하대를 참으면서 떠나지 않고 끝까지 허생의 의견을 경청한 것이다. 차선책은 없다는 허생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완은 계속해서 계책을 묻는다. 결국 허생이 두 번째 계책을 이야기하지만 이 역시 이완의 입장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종실의 여자를 도망 온 명나라 장수의 자손에게 시집을 보내고 권력자들의 집을 빼앗아 주는 일은 이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완은 머리를 숙이고 곰곰이 생각한 뒤에야 어렵다고 말하였다. 허생의 계책을 나름대로 깊이 생각한 것이다. 중국 호걸들과의 교제와 청의 실정 파악을 위해 나라의 자제들을 오랑캐의 복장으로 중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마지막 계책을 들은 뒤에, 이완은 결국 허탈하게[憮然]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사대부들은 모두 예법을 삼가 지키거늘 누가 기꺼이 머리를 깎고 오랑캐의 옷을 입으려 하겠소?”14)

 

이때 이완의 발언은 허생의 계책이 수용될 수 없는 현실적 상황을 지적한 것인데, 한편으로 허생 계책이 실현할 수만 있다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어 허생은 사대부라는 허울에만 매달린 현실 사대부들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다. 허울 좋은 예법에만 매달려 실질적인 방책을 고려하지도 실천하지도 않는 조선의 현실 사대부들을 비판한 것이다.15) 허생의 이 비판은 <허생전>의 절정 부분으로 핵심적인 주제를 드러내기에, 선행연구에서도 형식적인 예법에만 매달린 현실 사대부에 대한 비판으로 누누이 강조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영대장 이완을 단순히 허울에 사로잡힌 당대 사대부의 전형이라고 보기 어렵다. 앞서 살폈듯이 이완은 고관임에도 철저하게 몸을 낮추어 허생을 대하였고, 허생의 계책을 허투루 들은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계책에 대해서는 그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이완의 경우는, 당시 현실적 맥락에서는 북벌을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벼슬아치의 모습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효종시기 북벌을 위해 가장 노력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나름 최선을 다한 인물인 것이다.

12) 李公曰: “此異人, 與君俱往.” 夜, 公屛騶徒, 獨與卞氏, 俱步至許生. 卞氏止公立門外, 獨先入見許生, 具道李公所以來者. 許生若不聞者, 曰: “輒解君所佩壺.” 相與歡飮. 卞氏閔公久露立, 數言之, 許生不應. 旣夜深, 許生曰: “可召客.” 李公入, 許生安坐不起, 李公無所措躬, 乃叙述國家所以求賢之意, 許生揮手曰: “夜短語長, 聽之太遲.”
13) 公低頭良久曰: “難矣. 願得其次.”
14) 李公憮然曰: “士大夫皆謹守禮法, 誰肯薙髮胡服乎?”
15) 許生大叱曰: “所謂士大夫, 是何等也? 產於彛貊之地, 自稱曰士大夫, 豈非騃乎? 衣袴純素, 是有喪之服, 會撮如錐, 是南蠻之椎結也, 何謂禮法? 樊於期欲報私怨而不惜其頭; 武靈王欲强其國而不恥胡服. 乃今欲爲大明復讎, 而猶惜其一髮, 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 而不變其廣袖, 自以爲禮法乎?”

그럼에도 이완은 허생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북벌론을 추진하는 핵심적인 인사이면서도 진정 북벌할 방책은 실현하지도 못하고 동시에 한편으로 사대부의 허울뿐인 예법에 빠진 자이기에, 허생의 준엄한 비판 앞에 스스로 몸이 낮아지는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허생이 준엄하게 비판하는 것은 ‘信臣’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信臣’이 아닌 면모였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느냐” “대장이오.”

“대장이면 너는 나라의 신임 받는 신하[國之信臣]로군.

(…)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없구나. 그러고도 스스로 신임 받는 신하[信臣]라고 생각하다니, 신임 받는 신하[信臣]가 고작 이렇단 말이냐! 이런 자는 목을 베어버려야 해.”

 

위의 인용문은 이완과 허생이 나누는 대화의 처음 부분과 끝부분이다. 처음 부분에서 허생은 이완이 信臣임을 확인하였고 마지막 부분에서 信臣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점을 비판하였다. 이로 보아 허생 비판의 핵심은 信臣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완의 형상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허생 같은 이를 등용할 수도 없고, 그의 계책을 실현시킬 수도 없다. 나름 노력한다고 해도 허생의 계책을 관철 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신임 받는 신하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자리에 연연하는 私心에서 信臣의 자리에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출처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허생과 이완의 자리가 역전된다. 헐벗고 굶주린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출처의 도리를 지킨 허생과 출처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는 이완과의 거리가 뚜렷해 진 것이다. 전장을 달렸던 武將이지만 일개 서생의 말에 꼼짝하지 못하고, 결국 허생이 무서워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엄정한 도덕적 정당성의 힘에 압도된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허생은 출처의 의리를 고수하는 도덕군자의 전형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의 당당함은 이인적인 면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으려는 도덕군자적 모습에서 나온 것이다. <허생전>의 허생에서 다시금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할 것이다. 출처의 의리에 철저한 도덕군자의 새로운 모습이 바로 허생인 것이다.

Ⅳ. <許生傳>에 구현된 출처관의 교육적 의미

지금까지 출처관의 맥락에서 허생 형상의 특징적인 면모를 검토하였다. 허생은 공부를 통해 당대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 出處의 의리를 고수하는 새로운 도덕군자의 전형을 보이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출처의 의리를 고수의 한다는 측면에서 전통적인 도덕군자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갖춘 면에서 혁신적인 지식인의 전형을 보인다고 할 것이다. 이제 국어교과서에 수용되고 있는 <허생전>의 면모와 비교 검토하여, 허생이 구현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관-출처의 의리-의 교육적 의미에 대해 검토하도록 하자.

국어 교과에서 <허생전>이 수용되는 방식의 예는 최시한의 소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16) 이 소설은 실제 국어 시간에 <허생전>을 배우는 모습을 소설화한 작품인데, 실제 국어과 교과교육 논문에서 <허생전> 독서의 내면화 모델로 언급될 정도이고,17) 7차 교육과정 국어 교과서에서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에서 제시된 독법이 <허생전>의 학습 활동에 반영되기도 하였으며,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이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하였다.18)

16) 최시한(1996)
17) 김명석(2012)
18) 7차 교육과정에서는 『문학』 중앙(상)과 케이스(하),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국어』 중2-2 미래엔(윤), 『생활국어』 중2-1 신사고, 중2-2 미래엔(이), 금성 등에 <허생전을 읽는 시간>이 수록되었다.

<허생전을 읽는 시간>에는 국어교사인 왜냐 선생이 <허생전>을 읽는 방식을 학생들에게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구성주의적인 수업 모델로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허생전>의 의미를 탐구하고 나아가 내면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작품 말미에 왜냐 선생은 <허생전>의 한계를 평가하는 부분이 나온다.

 

 허생은 홍길동 같은 영웅처럼 보이지만 사실 영웅답지 못해요. 용준이가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면, 허생은 항상 선비로서 그러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정신적으로는 한 번도 선비의 자리, 양반 사대부라는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그 말입니다. 허생은 장사를 하지만 장사꾼을 경멸하고, 백성을 돕고 북벌책 같은 국가 대사를 논하지만 조정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농 공상을 구별하던 당시의 규범, 때가 아니면 초야에 은둔한다는 선비의 처세관에 묶여서 거리를 두고 비판하거나 도와주기만 할 뿐, 하나가 되어 함께 살고 책임지지는 않는 겁니다. 이 점이 바로 허생의 한계요 <허생전>을 지은 연암 박지원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 사회를 바로잡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양반 계층의 생각, 사대부가 쓰는 말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19)

19) 최시한(1996)

 

왜냐 선생의 허생에 대한 평가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허생이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점은 충분히 비판 가능하다. 특히 작품이 발표된 1992년의 사회적 상황이나, 전교조가 창립하여 갈등하던 당시에 전교조 소속 교사로 설정된 왜냐 선생의 처지 등을 고려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천하지 않는 허생의 면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더욱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이러한 읽기는 <허생전>이 창작되던 조선의 현실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 가능하며, 동시에 2010년대인 지금의 맥락을 고려하면 새롭게 읽을 필요가 있다.

앞서 검토하였듯이 허생은 전통적인 출처관을 엄정하게 지키면서도 당대의 실용의 맥락을 적절하게 수용하고 있다. 곧 엄정한 의리의 정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당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공부를 지속하였던 것이다. 이에 반해 ‘왜냐 선생’ 식의 독법은 근대주의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허생이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점이나 박지원이 <허생전>을 한글로 짓지 못했다는 점 등을 비판하는 점 등에서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허생의 면모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근대적인 면모라기보다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끌어안고 가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허생의 모습에서 분명 “장사를 하지만 장사꾼을 경멸”하는 태도, 국가 대사를 논하지만 “적극적으로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 모습, 사농공상을 구별하며 “함께 살고 책임지지 않”는 면모 등이 확인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허생은 출처의 의리를 지켜 선비로서 몸을 깨끗하게 하는 자세를 결코 버리지 않으면서 장사를 하였고, 조정에 뛰어들어 눈에 보이는 작은 성공에 빠지기보다는 조정에 뛰어 들지 않지만 항상 국가대사와 백성의 삶을 중심에 두고 실질적인 문제 해결의 방책을 모색하는 선비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 사회적 책임의식을 지닌 지식인으로서 빈곤한 가운데에서도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꾼’의 삶을 살지 않았으며,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지만 섣부른 출사로 자신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정치권력자의 길을 걷지 않았던 것이다.

Figure

Table

Reference

  1. 교육부(2015),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별책 1]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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