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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363(Print)
ISSN : 2465-8138(Online)
Han-Character and Classical written language Education No.50 pp.23-42
DOI : https://doi.org/10.15670/HACE.2021.50.2.23

The Perception and Literary Response Method to Plague in the Traditional Era
- Educational Meaning and Utilizing Methods of Chinese Literature Curriculum -

Kwon, Jin-ok
Assistant Professor, Departmen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Dankook University
2021년 04월 01일 2021년 05월 17일 2021년 05월 26일

Abstract

This thesis examines the perception of the plague in the traditional era, the literary response method, the educational meaning of the present day, and the utilizing method of Chinese literature curriculum. Today, while plagues are recognized in terms of overcoming, in the traditional era, plagues are recognized in terms of fear. In the traditional era, plagues were regarded as unclear objects, and literary works were created in a way to cope with plagues. These writings were also created to intimidate and drive out yeoggwi(疫鬼), and were also created to persuade and soothe them away. However, these writings themselves show a high level of literary character. Like today's so-called literary therapy, it goes to the point of healing at the mental and psychological level through the act of literary creation. The literary character of Lee, jeong-gwi(李廷龜)'s funeral oration is a transformation of Han, yu(韓愈)'s Songgungmun(送窮文) and expanding his worries about the country through self-examination. Yu, mong-in(柳夢寅)'s funeral oration describes the tragedy of suffering human beings realistically, is bitter and concrete in criticizing the wrongdoings of yeoggwi(疫鬼). Through such criticism and intimidation, the reversal that was perceived as the object of fear changes into a weak entity, which acts as a mechanism to find and overcome psychological comfort in the pain of reality. The educational meaning and the plan to utilizing Chinese literature curriculum of the two works are as follows. The students can read the wisdom and thoughts of the ancestors who tried to overcome pain through introspection. In addition, students can comprehensively understand byeonmun(騈文), can explain the relationship between Chinese classics and Korean classics. The students can understand the traditional culture's funeral ritual to cope with plagues, and can read the format of the funeral oration, the subject and the content in multiple layers.

전통 시대 문인지식인의 역병에 대한 인식과 문학적 대응 방식
- 교육적 의미와 한문 교과 활용 방안 -

권진옥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초록

이 논문은 전통 시대 역병에 대한 문인지식인의 인식, 문학적 대응 방식, 오늘날의 교육적 의미와 한문 교과 활용 방안을 고찰한 글이다. 오늘날에는 극복의 측면에서 전염병을 인식한다면 전통 시대에는 공포와 두려움의 측면에서 인식하였다. 전통 시대 문인지식인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문학 작품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유몽인의 제문처럼 역귀를 협박하여 쫓아버리기 위해서, 혹은 이정귀의 제문처럼 설득하고 달래어 떠나보내기 위한 글은 그 실용적인 목적과는 달리 그 자체로 수준 높은 문학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또한 오늘날의 이른바 문학 치료와 같이 문학 창작 행위를 통해 정신적․심리적 차원에서 치료 하는 지점까지 나아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내적인 성찰을 통해 역병을 극복하고자 했던 선인의 지혜와 사상을 읽을 수 있으며, 전염병에 대처하는 전통문화로서의 제의를 이해할 수 있으 며, 이에 수반하는 전통적인 글쓰기인 제문의 형식과 체재, 주제와 내용을 다층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Ⅰ. 머리말

 이 논문은 전통 시대 문인지식인이 역병(疫病)에 대해 어떻게 인식을 했으며 그 대응에 있어서 문학적으로 어떠한 방식을 취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교육적 의미를 추출하여 한문 교과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글이다.
 전염병은 시대⋅지역⋅사람을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전통 시대에는 두창(痘瘡 천연두), 학질(瘧 疾 말라리아), 괴질(怪疾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창궐하여 국가적인 위기를 만들어 내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군주와 신하는 임기응변의 법률과 제도를 마련하고 백성은 민간 신앙과 치료법에 기대어 각자의 위치에서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전통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술이 발달된 오늘날에도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에는 전통 시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다. 다만 전염병에 대한 인식은 고금(古今)의 차이를 보이니, 공포와 극복의 대상인 전염병에 대해서 전통 시대는 공포의 측면에서, 오늘날에서는 극복의 측면에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전통 시대에는 전염병을 신이(神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반해 오늘날에는 백신[vaccine]을 통해 언제든 전염병 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인한다. 물론 전통 시대에도 병리학(病理學)을 통해 전염병을 극복하 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효력과 믿음에 있어서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 시대에는 병리학적인 치료와 더불어 우선 군주부터 천제(天帝)를 위시한 각종 신들에게 치성을 드려 제사를 지내거나 민간에서는 나례(儺禮)와 같은 민속 의식을 병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인지식인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문학 작품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조정의 안팎에서 벼슬살이할 경우에는 대체로 국가나 지역 단위에서 역귀(疫鬼)나 여귀(癘鬼)를 대상으로 한 제문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포의의 신분으로 은거할 경우에는 자신과 마을 단위에서 제문을 비롯한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역귀나 여귀를 위한 제의(祭儀)에 동원되는 제문은 의례적이거나 공식적인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꼭 천편일률적인 것만은 아니다. 역귀를 협박하여 쫓아버리기 위해서, 혹은 설득하고 달래어 떠나보내기 위해서 창작되는 제문은 작자의 문학적 역량에 따라 그 실용적인 목적과는 달리 그 자체로 수준 높은 문학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한편 개인적인 차원에서 역귀를 대상으로 제문이나 한시(漢詩), 송서(送 序) 등을 창작할 경우에는 한층 더 높은 문학성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이른바 ‘문학 치료’와 같이 문학 창작 행위를 통해 정신적⋅심리적 문제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지점까지 나아가 기도 한다.
 위와 같은 사례에 주목하여 대규모의 전염병과 이에 대한 문학적 대응과 형상화를 주제로 삼은 연구 성과들도 있고,1) 전염병을 비롯한 개인이 겪은 각종 질병을 문학적으로 어떻게 형상화하고 극복했는지를 연구한 성과들도 있다.2) 이 논문은 이와 같은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고려하면서,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 주목하여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는 전염병을 일으키는 역귀에 대한 태도, 즉 협박하여 쫓아버리고자 하는지 아니면 달래고 설득하여 자연스레 떠나보내려고 하는지에 따른 각각의 문학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는 이들 문학 작품에서 간취할 수 있는 문학성을 규명하여 전염병에 대처하는 문학으로서의 글쓰기를 설명하고자 한다. 셋째는 오늘날 교육적 의미를 추출하여 한문 교과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위의 세 가지를 고려하여 선정한 글은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送瘧文]〉 과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서강의 마을 사람을 위해 역귀에게 고하는 제문[西江 村民祭癘疫鬼文]〉이다. 더구나 이들은 조선 중기 한문학사에서 대표할 만한 작가이기 때문에 한문 교과에 활용하기에 매우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1) 김영주(2007), 이주영(2010), 강상순(2015), 박동욱(2015).
2) 김동준(2009), 박상영(2009), 강민구(2010a), 강민구(2010b), 김하라(2013), 강수진(2015), 안득용(2016), 이홍식(2016).

Ⅱ. 자아 성찰을 통한 치유, 이정귀(李廷龜)의 〈송학문(送瘧文)〉

 이정귀는 학질에 걸리자 민간 의식을 빌려 제사를 지낸 다음, 이에 대한 일을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을 통해 서술하였다.3)
 1590년(선조23)에 이정귀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무어사, 병조 좌랑, 이조 좌랑 등을 역임하고, 1593년(선조26)에는 부친상을 당하였다. 아마도 이때 상중에 애훼(哀毁)한 나머지 학질의 징조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3년 뒤인 1596년(선조29) 에 상복을 벗게 되자 예조 좌랑, 동지사 서장관, 성균관 직강 등에 제수되었지만 학질로 인해 모두 나아가지 못하였는데, 이해 12월 그믐날에 집안의 가동(家僮)들이 동네 사람들을 불러 놓고 나례(儺禮)를 행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4) 33세의 한창 나이에 학질로 인해 심신이 고통스러웠던 그는 민간의 나례라는 의식에 기대어 자신에게 붙은 학귀(瘧鬼)를 쫓기 위해 제사를 지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마을 사람이 나례를 행하는 것을 공자(孔子)께서도 보셨으니 그 유래가 이처럼 오래되었다.’ 하고, 이어서 생각하기를 ‘내가 학질(瘧疾)이 걸린 지 오래이니, 혹 이로 인하여 떠나보낼 수 있겠구나.’ 하였다. 이에 검은 깃발을 수레에 꽂고 흰 휘장을 배에 치고서 건량을 모두 싣고 비린 음식을 차려 놓고는, 옷깃을 여미고 몸을 굽힌 채 마음을 비우고 제사를 지냈다.5)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은 주인(主人)으로 등장하는 이정귀와 학질에 걸리게 한 학귀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두 차례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①-1 학귀(瘧鬼)를 불러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고하였다. “그대가 욕되게도 나와 함께 산 지 어느덧 3년이 다 되었소. 그대가 처음 올 때 누가 우리 집에 살라고 했으며, 그대가 오래 머물고 있는데 누가 못 가게 만류했소. 아무도 모르게 와서는 눌러앉아 어찌 가질 않는 것이오. 오는 것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하고 가는 것은 마치 허물을 벗듯 뭉그적거리는 것이오. 처음에 는 하루건너 찾아와 다소 서먹한 듯하더니 결국에는 밤마다 찾아와 다시 친밀한 듯하였소. 그 대가 찬 기운을 불어 보냈다가 뜨거운 기운을 부채질하는 등 변덕이 심하였소. 한여름에 두꺼 운 겨울 갖옷을 입고도 화로를 끼고 살고 추운 날 얼음물을 마시고도 더위를 호소하였소. 일하 지 않아도 등에는 땀이 흐르고 움직이지 않아도 다리가 후들거린다오.”6)
 
①-2 “내가 마구 기만하고 욕해도 그대는 싫어하지 않고 내가 구토를 일으키며 오물을 뱉어도 그대는 수치로 여기지 않았소. 내가 몰래 도망쳐 숨은 것은 그대가 와서 습격할까 피한 것인데, 그대는 마치 염탐꾼이라도 둔 듯이 어김없이 뒤쫓아 왔소. 내가 독성이 강한 약을 먹은 것은 그대의 삿된 기운을 쓸어 내기 위한 것인데, 그대는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사납게 기승을 부렸 소. 내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며, 얼굴에 때가 끼어도 씻지 않고 머리카락이 엉클어져도 빗지 않으며, 혼백이 달아나 마치 미치광이나 바보와 같고 마음이 두렵고 어수선하여 날로 쇠잔하게 만든 것은 모두 그대의 짓이라오.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토록 모 질게 괴롭히며, 무슨 미련이 있기에 이토록 오래 머물고 있단 말이오. 그대가 만약 지각이 있다 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소.”7)
 
①-3 “오늘 이 좋은 날에 감히 그대를 전별해 보내니, 그대는 나의 말을 알아듣고 그대는 나의 술잔을 받아 마시구려. 한해(漢海)의 맑은 물결이 바로 그대가 갈 곳이요 작은 마을의 궁벽한 집은 그대가 머물 곳이 아니라오. 어서 번개와 바람을 타고 훌쩍 날아오르고 그대는 지체하며 머뭇거리지 마시오.”8)
 
 ①-1에서 ①-3까지는 이정귀가 학귀에게 진정으로 고하는 말인데, 그간의 고통과 노력을 곡진하 게 호소하여 더 이상 붙어 있지 말고 멀리 떠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①-1은 학질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 것이고, ①-2는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 힘겨운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음을 고백한 것이고, ①-3은 전별의 술잔을 바치며 이러한 사정을 학귀가 알아듣고 멀리 떠나도록 타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이정귀가 고하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학귀가 다가와 말을 건네었다.
 
②-1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하품 소리가 다가와 신골(神骨)이 송연하더니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곤두서며 숨이 차고 이마에 땀이 났다. 무슨 신물(神物)이 나를 내리누르는 듯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의 말을 들어보니 참으로 괴롭겠소. 그러나 이 점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하였소? 나무가 썩으면 날짐승이 모여들고 고기가 썩으면 벌레가 생기며, 나라는 반드 시 스스로를 친 뒤에 외부의 적이 와서 치고,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를 해친 뒤에 외부의 삿된 기운이 와서 해치는 법이라오. 내가 그대를 보니 그대를 병들게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오.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로 얘기하고 바보처럼 웃다가 눈물 없이 곡(哭)하며 가슴이 답답하여 늘 갈증이 나고 얼굴이 참담하여 생기가 없는 것은 그대의 심장이 병든 것이오. 밥상을 앞에 놓고 구역질이 나고 음식을 걷어치우고 잠을 재촉하며 어제 먹은 음식물이 목에 걸린 듯하고 주린 창자가 늘 출출한 것은 그대의 비장(脾臟)이 병든 것이오. 탁한 콧물과 더러운 침이 목구 멍을 꽉 막아 조금만 추워도 기침이 나고 잠시만 수고롭게 움직여도 숨이 찬 것은 그대의 폐가 병든 것이오. 왼쪽 다리가 유독 뻣뻣하여 걸음걸이에 균형이 잡히지 않는 것은 그대의 지체(肢體)가 이미 습랭(濕冷)에 병든 것이오. 힘줄은 강하고 살은 죽어 경련을 일으키고 오그라드는 것은 그대의 기맥(氣脈)이 이미 풍한(風寒)에 병든 것이오. 무릇 이 다섯 가지 병이 그대의 다섯 가지 학질인데,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져서 몸을 해치고 뼛속까지 침범하는데도 그대는 그저 편안하게 세월만 보낼 뿐 안일하여 경계할 줄 몰랐소.”9)
 
②-2 “음식과 거동을 밖에서 조심하지 않고 근심과 사념은 안으로 기력을 해쳤다오. 마침내 화 기(火氣)는 상승하고 수기(水氣)는 하강하여 음(陰)과 양(陽)이 서로 소통되지 않고 기(氣)가 피 를 움직이지 못하여 조화를 잃고 건강이 나빠져 그대의 원기(元氣)가 날로 고갈되었소. 그리고 풍토가 좋지 않은 곳을 무릅쓰고 벌레가 들끓는 속에서 묵묵히 은거하며 잠을 벗 삼아 살고 있었으니, 이것이 내가 의기양양하게 와서 주위를 살피며 그대를 지키고 있었던 까닭이라오. 따라서 내가 그대를 찾은 게 아니라 그대가 실로 나를 기다린 셈이오. 그대가 상중(喪中)에 있 을 때 조석으로 곡읍(哭泣)하며 변변찮은 음식조차 제때 먹지 않았으며 고난과 고통이 그대와 함께하였소. 그대의 거처는 궁벽하고 초라한 오두막이라 사람들이 모두 등을 돌려 인적이 없이 적막했으며 그대는 그 속에서 흐릿한 정신으로 병석에 누워 있었거늘 오직 나만이 그대를 찾아 주었소.”10)
 
②-3 “명리(名利)의 굴레는 사람을 패망의 길로 몰아넣으며, 계륵(鷄肋)과 같은 벼슬에 연연하 면 그 화(禍)는 촛불에 날아드는 나방처럼 들이닥친다오. 그대가 그 길로 가려는 것을 내가 만 류하여 그대의 생명을 보전해 주었으니, 내가 그대를 병들게 한 것은 그대를 옥처럼 다듬어 완 성시켜 주는 것이라오. 그런데 지금 도리어 엉뚱한 이유로 비방하여 나를 몰아내려고만 하고 끝내 고맙다는 인사는 하지 않고 헐뜯는 말만 마구 늘어놓는구려. 나의 후한 은혜를 잊고 나와 의 오랜 친분을 버리니, 이보다 더한 불인(不仁)이 어디 있겠소. 자신의 건강 관리에 어두운데 병이 절로 낫기를 바라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무지(無知)가 어디 있겠소. 지금 약을 쓰지도 않 고 푸닥거리를 할 것도 없이 나를 떠나보낼 방법이 있으니, 그대는 들어보겠소?”11)
 
 귀찮고 따분한 듯이 학귀는 하품을 하며 등장하여, 이정귀의 호소와 간청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며 책망하고 있다. ②-1에서는 이미 심장, 비장, 폐, 지체, 기맥 등 다섯 가지 기관에서 병이 있었는데도 평소 건강을 관리하지 못한 이정귀의 안일함을 나무라고, ②-2에서는 거상(居喪) 중에 더욱 심신을 해쳐 궁벽한 곳에서 흐릿한 정신으로 병들어 누워 있는 이정귀를 유일하게 찾아준 사실을 강조하였다. ②-3에서는 명리(名利)의 굴레와 계륵(鷄肋)과 같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외려 생명을 보전하게 하였음을 역설하면서, 이정귀의 불인(不仁)과 무지(無知)를 탓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한 약도 번거로운 푸닥거리도 필요 없이 치료할 방법을 알려 준다고 하자, 이정귀 는 “이 늙은이는 어리석어 위태로운 상황에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원컨대 불쌍히 여겨 밝게 잘 알려 주시오.”12)라고 하였다. 이에 학귀는 그 묘책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③ 학귀(瘧鬼)가 가는 듯하더니 다시 돌아와 기세가 올라 손뼉을 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한 사람의 몸은 한 나라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정신은 군주와 같고 기운은 백성과 같소.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고 기운이 소진되면 몸이 죽는 법이라오. 적이 나라 밖에 있는데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부역과 세금을 가중하여 백성의 생산을 긁어모으면 민심이 원망하고 배반 하여 나라 안이 먼저 궤멸하게 될 것이오. 병이 몸 바깥에 있는데 속히 낫고 싶어서 독한 약을 투여하여 기혈(氣血)을 마구 치고 흔들어 놓으면 원기가 나른하여 절로 사멸하게 될 것이오. 지금 그대가 그대의 정신을 살리고 그대의 생각을 평온하게 하고 그대의 음식을 절제하고 그대 의 기거(起居)를 조절하여 음양(陰陽) 두 기운이 조화를 이루고 온갖 기맥이 소통하여 원정(元 精)이 안에서 튼튼하고 기혈이 왕성하게 되면, 나는 응당 속히 스스로 물러날 것이오. 어찌 그 대가 수레와 배를 만들어 나를 전별해 주기를 기다리겠소.”13)
 
 군주와 백성의 관계, 국가의 내치와 외치를 각각 사람의 정신과 기운, 그리고 병을 다스리는 요체에 비유하여, 정신 수양과 기운의 조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저절로 학귀가 떠난다는 것이다. 이정귀는 이 말을 듣고 문득 깨달아 학귀에게 사례하기를 “나는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나라를 치료하는 방법까지 들었으니, 삼가 이 말을 기억하여 좌우에 써 두리다.”14)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을 대상으로, 그 내용과 형식의 얼개를 짚어 보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추상적인 존재를 불러서 호소하고, 추상적인 존재가 등장하여 호소하는 대상을 외려 설득하고 감화하는 서사로 구성하면서 이를 대화체로 설정한 점은 양웅(揚雄)의 〈축빈부(逐貧賦)〉 나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등의 전통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내용과 형식의 측면에서 보면 〈송궁문〉에 더욱 가깝다.15) 사실 한유의 〈송궁문〉에 등장하여 말하는 궁신(窮神)이 든, 이정귀의 〈송학문〉에 등장하여 말하는 학귀든 작자의 목소리이다. 앞의 ①과 ②는 이정귀와 학귀가 대화를 주고받으며 학질의 신체적 증상과 부작용, 학질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과 결과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이정귀가 학질을 앓은 이후에 실제로 겪은 사실과 소회를 나열한 것이다. 이에 반해 ③에서 말하고 있는 학질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①과 ②를 통해 이정귀가 깨달은 바를 학귀의 입을 빌려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수양과 기운의 조화는 신체적인 요건과 치료법을 넘어서 자아 성찰을 통한 정신적 치유인 셈이다.16)
 명리와 벼슬에 연연했던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여, 온전한 정신력을 토대로 원기(元氣) 를 보양하여 신체적 온전함을 기약하는 것이야말로 학질을 치유하는 근본적인 묘책인 것이다. 이와 같은 자아의 성찰은 국가의 병폐를 치유하는 묘책과 연결된다. 당시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이 정작 왜적에 대한 방비는 소홀히 하고 부국강병이라는 이유로 나라 안 백성에게 부역과 세금을 가중하여 민심을 이반하게 만든 점을 비판한다. 정신이 온전해야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듯이 백성이 온전해야 부국강병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정귀가 학귀의 말에 사례하면서, 나라의 치료법까지 들은 것을 특히 강조하여 좌우에 기록하겠다는 다짐은 단순히 자신이 앓고 있는 학질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적 문제까지 주제를 확대하여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이렇듯 이정귀의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은 형식적 측면에서는 한유의 〈송궁문〉을 변용한 점, 내용적 측면에서는 개인의 자아 성찰을 통해 국가에 대한 고민까지 확대한 점에서 그 문학성을 간취할 수 있다.
 
 
3) 《月沙先生年譜》권1. ‘萬曆 24년 丙申年(1596, 선조29) 先生 33歲’ “겨울에 학질(瘧疾)에 걸리자 글을 지어 떠나보냈다. [冬遘瘧爲文以送之.]”
4) 李廷龜, 《月沙集 권33》, 〈送瘧文〉, 韓國文集叢刊 권70. “병신년(1596, 선조29) 12월 신묘일 그믐날 저녁에 主人翁이 병석에서 일어나 근심스레 앉아 있었다. 家僮 10여 명이 이웃 백성들을 소리쳐 불러 뜰에 모아 놓고는 광대처럼 요란스럽게 춤판을 벌여 꽹과리와 북을 치고 대열을 지어 질서정연한 걸음으로 나에게 와서는 말하기를 ‘지금 이 한 해가 저무는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을 儺禮라 하니, 송구영신하고 災厄과 癘鬼를 물리치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歲丙申十二月辛卯晦之夕, 主人翁病起悄坐. 有家僮十餘人, 噭呼隣氓, 群聚于庭, 侏儒雜挐, 錚鼓喧鍧, 押隊整步, 進余而謂曰, ‘今茲歲除, 是謂儺禮, 送舊迎新, 袚除災癘.’)”
5) 李廷龜, 위의 글. “余聞而思之, 鄕人之儺, 夫子觀焉, 其來若是古矣. 繼而思之, 吾之病瘧, 亦舊矣, 儻可因是而送之. 乃玄旗揷車, 縞帷張船, 畢載糗粻, 羅薦薰羶, 束袵傴僂, 虛心將事.”
6) 李廷龜, 위의 글. “奉請瘧鬼, 陳詞長跪曰, 子之辱與鄙人居, 行且三年矣. 子之初來, 夫孰館之? 子之久留, 夫孰挽之? 黭默而來, 羃焉而逝? 其來若期, 其去若蛻. 始焉隔日, 若少疑憚, 終乃連宵, 似復親款. 噓寒煽熱, 變態殊候. 盛夏重裘, 猶復擁鑪, 霜朝飮氷, 猶復呼暍. 背不勞而汗, 股不動而慄.”
7) 李廷龜, 위의 글. “誑欺罵詈, 不以爲惡, 嘔吐臭穢, 不以爲辱. 潛逃暗匿, 所以避子之來襲也, 而子必踵至, 若有偵諜. 猛劑毒藥, 所以盪子之邪沴也, 而子不畏沮, 益肆狂猘. 凡所以使吾夜不得寢, 食不知味, 面垢莫盥, 頭蓬莫理, 魂迷魄遁, 若狂若癡, 伈伈聵聵, 日就沈澌者, 皆子之爲也. 有何讐怨, 凌虐若是其苦, 有何眷戀, 留連若是其久? 子若有知, 能無愧忸?”
8) 李廷龜, 위의 글. “今也良辰, 敢餞子行, 子領我說, 子歆我觴. 漢海淸波, 寔惟子所, 窮廬隘村, 非子宜處. 駕電馭風, 翩焉遐擧, 子無淹滯, 以事猶豫.”
9) 李廷龜, 위의 글. “言未訖, 呵欠沓至, 神骨竦然, 粟體豎毛, 喘喉汗顚. 若有神物, 壓余而言曰, 子之言, 良亦苦矣, 抑未之思乎? 夫木朽而禽集, 肉敗而蟲生, 國必自伐而後外寇伐之, 人必自戕而後客邪戕之. 以吾視子, 病子者, 非獨吾也. 冥思獨語, 癡笑乾哭, 胸煩長渴, 面慘無色, 則子之心病矣. 對案思嘔, 撤哺催眠, 宿食橫咽, 飢腸惄焉, 則子之脾病矣. 濁涕臭涎, 頑結喉膈, 乍寒喘逆, 少勞氣促, 則子之肺病矣. 左股偏枯, 行步不整, 子之肢體, 已病於濕冷矣. 筋強肉死, 拘急攣踠, 子之氣脈, 已病於風寒矣. 凡此五病, 爲子五瘧, 日增月滋, 敗形侵骨, 而子玩愒少康, 怠不知戒.”
10) 李廷龜, 위의 글. “飢飽動止, 不謹于外, 憂愁思慕, 鑠之于內. 遂致火上水下, 陰陽否塞, 氣不運血, 榮乖衛逆, 子之眞元, 日以耗矣. 方且瘴穢之是冒, 螺螬之與混, 幽居默默, 與睡爲伴, 此余所以施施而來, 闖闖而守者也. 非我求子, 子實候我. 子在草土, 朝暮哭泣, 寒蔬麤糲, 有時而絶, 艱難酸苦, 與子是同. 子居深僻, 掩蓽垂蓬, 衆皆背馳, 闃無人蹤, 昏昏病枕, 惟我來從.”
11) 李廷龜, 위의 글. “利途名韁, 覆車敗轍, 戀存鷄肋, 禍慘蛾燭. 我挽子行, 保子全生, 凡我之病子, 蓋亦玉汝于成也. 今反淫辭造謗, 驅我令去, 卒不見德, 而肆其誣詆. 忘我厚恩, 棄我宿好, 不仁孰甚焉? 昧於自治, 欲病之自效, 不知孰甚焉? 今也不用藥餌, 不煩禳袚, 送我有術, 子欲聞其說乎?”
12) 李廷龜, 위의 글. “主人再拜曰, 朽人懵謬, 危不自效, 願卒矜憐, 明以詔之.”
13) 李廷龜, 위의 글. “鬼乃若去復來, 軒眉抵掌曰, 嘻嚱! 夫一人之身, 一國之象也, 神猶君也, 氣猶民也. 民散則覆國, 氣耗則喪身. 敵在於外, 求以富強, 煩賦重斂, 剝民之生, 則民心怨叛, 國內先潰. 病在於外, 求以速快, 投之猛藥, 震撓擊搏, 則元氣薾然, 自致顚滅. 今汝恬汝之神, 坦汝之慮, 節汝之飮食, 調汝之起處, 使二氣諧和, 百脈宣暢, 元精內固, 氣血興旺, 則我當奔走自退, 何待汝之船車餞享乎?”
14) 李廷龜, 위의 글. “主人於是惕然內省, 憋焉有得, 攅手而謝曰, 余問醫病, 兼聞醫國, 敬記斯語, 書之座側.”
15) 韓愈의 〈送窮文〉을 역대의 우리나라 문인들이 어떻게 변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김미라(2019)의 연구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 논문에서는 변용 형태를 고려 시대 李奎報의 〈驅詩魔文〉계열과 조선 후기에 많이 창작된 〈送痘神文〉계열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는데, 李廷龜의 〈送瘧文〉은 연구 대상에서 누락되어 있다.
16) 沈魯崇은 〈白髮記〉, 〈自著紀年〉, 〈自著實記〉에서 자신이 앓은 질병을 대상으로 신체적으로 돌보는 한편 이를 통해 정신적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의식을 드러내었다. 이에 대해서는 안득용(2016)의 연구를 참고하기 바란다.

Ⅲ. 신랄한 비판을 통한 심리적 극복, 유몽인(柳夢寅)의 〈서강촌민제여역귀 문(西江村民祭癘疫鬼文)〉

 《어우야담(於于野談)》과 《어우선생연보(於于先生年譜)》에는 학질과 관련한 유몽인의 일화가 공히 수록되어 있다. 1602년(선조35) 44세의 유몽인은 부여(扶餘) 백마강(白馬江) 강에 집을 지어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었는데, 학질에 걸린 가동(家僮)을 위해 학질을 꾸짖는 시를 지어 학질을 낫게 한 일이 있었다.
 
가동(家僮) 중에 학질(瘧疾)에 걸린 사람이 있었는데, 공이 학귀를 꾸짖는 시를 지어 붉은 글씨 로 써서 가동의 등에 붙이자 병이 즉시 나았다. 그 묵은 종이를 서로 전해가며 등에 붙여서 학질 을 고친 경우가 호서(湖西)와 호남(湖南)에 수백 집안이나 되었다.17)
 
 학질을 고치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 전해가며 등에 붙였다는 유몽인의 시는 〈학귀를 꾸짖다[譴瘧 鬼]〉라는 시이다.
 
〈학질 귀신을 꾸짖다[譴瘧鬼]〉
 
토백(土伯)은 구불구불 아홉 번 구부러진 몸
뾰족한 두 뿔이 하늘을 찌를 듯하네
천 장 솥에서는 기름이 어지러이 끓고
만 명의 신장(神將)은 창을 서로 부딪치네
입 벌려 발해를 들이마시니 티끌만 남고
주먹 휘둘러 곤륜산을 부수어 가루로 만드네
가련하다 수제(水帝)의 힘없는 아이 귀신이여
별처럼 바람처럼 달아나 땅 너머로 숨네18)
 
 유몽인은 땅의 신인 후토(后土)의 위엄을 내세워 하찮은 학귀를 협박하여 내쫓고자 한 것이다. 수제(水帝)의 힘없는 아이 귀신은 바로 전욱(顓頊)의 아들을 가리키는데, 그가 죽어서 학귀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학질인 말라리아가 모기를 통해 전염된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전통 시대 사람들은 물을 통해 전염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학귀를 언급할 때 늘 수제인 전욱의 아들과 관련하여 서술한 것이다. 한편 학귀라는 존재는 하찮고 잡스러운 귀신으로 치부하여 그보다 훨씬 강력한 위엄과 권위를 내세워 그것을 쫓아내려는 인식도 일반적이었다. 윤기(尹愭, 1741-1826)는 자신이 학질에 걸리자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한시를 지은 바 있다.
 
《서청시화(西淸詩話)》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학질을 앓는 자가 말하였다. ‘두보(杜 甫)가 말하기를, 나의 시가 학질을 낫게 할 수 있으니, 바로 자장(子璋)의 머리뼈에 피를 묻혀, 손으로 집어 최대부(崔大夫) 앞에 던진다.[子璋髑髏血糢糊, 手提擲還崔大夫.]라는 구절이다.’ 하였 는데, 내가 이 시를 외우자 과연 학질이 나았다.” 이 내용을 보면 귀신도 시를 두려워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보의 시에 “석 달 가을 학질을 누가 참을 수 있으랴.[瘧癘三秋孰可忍]”라고도 하였고, 또 “세 해를 오히려 학질에 걸렸네.[三年猶瘧疾]”라고도 하여, 학질의 괴로움을 읊었다. 그렇다면 학질의 귀신은 두보의 시만 두려워하고 두보라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인가. 아니면 일 만들기 좋아하는 자가 지어낸 이야기인가. 나도 역시 학질의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던 터 라 시를 지어 꾸짖는다.19)
 
 해당 시는 7언절구인데 1-2구는 “자장(子璋)의 머리뼈 집어 들고 피를 바르니, 웅건한 시 한번 외자 학질 벌써 나았네[髑髏提擲血糢糊, 一誦雄辭瘧已無.]”이다. 제목과 한시에 모두 등장하는 자장(子璋)은 단자장(段子璋)인데, 그가 난을 일으키자 최광원(崔光遠)이 용맹을 떨쳐 평정한 사실이 있다. 최광원은 바로 제목에 등장하는 최대부(崔大夫)로, 그는 평소 성격이 포악하여 그 이름만 들으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칠 정도로 위맹이 대단했다고 한다. 두보와 윤기 또한 유몽인과 마찬가지로 학귀보다 더 강력한 존재를 내세워 학귀가 겁을 먹고 도망가도록 유도한 것이다.
 위의 사례들이 한시를 통한 학질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라고 한다면, 아래는 유몽인이 제문을 통해서 학질에 대응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618년(광해군10) 60세의 유몽인은 파출(罷黜)되어 서강(西江)의 와우산(臥牛山)에 은거하였다. 당시에 마을 사람들이 여역(癘疫)으로 고통을 당하자, 그는 여역의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아울러 제문을 지었다.20)
 
① 생각건대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고 그 정기(精氣)가 변한 것이 혼(魂)이다. 이미 이승과 저승의 길이 나누어져 천리(天理)가 절로 구별되고, 신(神)과 간(姦)을 알아보기 위해 사물에 형 상화하였으니 성스러운 계책이 밝게 빛났다. 아, 너희 여역(癘疫)이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양강 (陽强)의 기운이라 일컬어졌다. 백유(伯有)는 정(鄭)나라에 재앙을 끼쳤고, 실침(實沈)은 진(晉) 나라 때 빌미가 되었다. 위사(委蛇)는 수레 소리가 들리는 것을 싫어하니 환공(桓公)이 제후들 을 규합하여 패자(霸者)가 되었고, 팽생(彭生)이 돼지에 빙의하여 사람처럼 서서 슬피 우니 제 후(齊后)가 화살 하나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다. 귀신이 더러 사람에게 빙의하지만 요사스러움은 덕을 이기지 못한다.21)
 
② 가만히 생각건대, 지금 사계절이 차례를 잃고 음양의 기운이 조화롭지 못하다. 겨울에도 땅 이 질펀하게 진창이 되니 어찌 한 해를 마칠 옷을 생각하겠으며, 봄날의 추위에 바위가 갈라지 니 피부를 찢는 매서움을 막을 수 없다. 바다와 산악의 온기(溫氛)에 침식당하고 도랑의 요기 (妖氣)에 잠식당했다. 전쟁에 사람들 죽어 나가니 새 그림자도 황량한 사막을 지나가지 않고, 형옥(刑獄)에는 원통한 이가 많으니 칼날의 광채가 북두(北斗)와 견우(牽牛)를 아득히 가로지른 다. 게다가 화운(火雲)이 천 리에 뻗으니 어떤 초목인들 마르지 않을 수 있겠으며, 물이 삼호(三 湖)에서 범람하니 지난해에 더욱 심하였다. 부호(富豪)들은 온 집안을 거느려 도망쳐서 포탈(逋 脫)하고, 백성들은 바가지를 들고 지(篪)를 부른다. 너는 이때에 사람이 춥고 굶주린 틈을 타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군영(軍營)에 파고들어 해악을 부리니 집집마다 불타는 듯하고, 이웃으로 퍼져 점점 번져나가 멀리까지 이르지 않은 데가 없다. 띠를 엮고 장막을 둘렀으니 양식[庚癸]을 누구한테 의지하겠는가. 좁은 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다리를 겹치니 큰 고깃덩이처럼 포개어 있 다. 헝클어진 머리와 때 묻은 얼굴이 모두 짐승의 먹이가 되고, 시체가 성안에 넘쳐나고 구덩이 에 가득 차니 어찌 삼태기와 들것의 흙으로 가릴 수 있겠는가.22)
 
③ 생각건대 밝음과 어두움은 한 가지 이치이니 생사를 미루어보면 근원이 같다. 예전에 너도 육부(六腑)와 백해(百骸)가 있어 천금에 비할 만큼 스스로 아꼈거늘, 지금 사람들은 열 집에 세집도 병이 나은 곳이 없으니 한결같이 보아 똑같이 어질게 대하는 마음을 잊었다. 지옥이 혹 있다고 어찌 장담하랴. 천상의 법도를 범하기 어려움을 어찌 생각하지 않는가. 너는 듣지 못했 는가, 선한 사람에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를 내리는 것이 신도(神道)의 올바름이고, 사람 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면 반드시 은밀히 죽인다는 것을. 명관(冥官)은 사람을 아껴서 본디 공평하게 처리할 줄 아니, 상제(上帝)가 너를 굽어보며 어찌 무고한 사람을 잘못 죽이는 것을 내버려 두겠는가. 짐승을 사냥하듯 지령(至靈)인 사람을 대하니 어찌 차마 이런 짓을 하는가. 선을 밝히고 악을 두렵게 하는 하늘의 거울을 우러러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23)
 
 ①은 여역(癘疫)이 한갓 요귀(妖鬼)에 불과하여 결국은 인간의 덕(德)을 해칠 수 없다는 내용이고, ②는 여역의 참상을 핍진하게 형상화한 부분이며, ③은 인간을 보살피는 상제(上帝)가 무고한 인간을 죽이는 여역을 벌할 것이라는 예언이다.24) 여기서도 위의 한시들과 마찬가지로 여역은 귀신의 일종으로 상정하여 하늘이라는 절대적 위엄과 권위에 기대어 물리치고자 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제문은 편폭의 길이로 인해 한시보다는 역귀로 고통 받는 인간의 참상을 핍진하게 형상화하고 역귀의 잘못을 비판하는 내용도 더욱 신랄하고 구체적이다.
 역귀는 한때 인간이었다가 원한을 품고 귀신이 된 존재이다. ①에서 등장한 여귀(癘鬼) 백유(伯有) 와 돼지에 빙의한 팽생(彭生)은 인간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불행을 만드는 귀신이지만 온전한 인간의 덕은 훼손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천지가 조화를 잃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러한 요귀들 이 그 틈을 타서 기승을 부리는 법이다. ②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굶주린 채 속수무책으로 전염병에 걸려 죽어 나가는 인간 세상의 참상을 묘사한 것인데, 그 해악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러한 귀신의 잘못은 ③에서 그 원죄(原罪)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서 오롯이 드러나고 있다. 역귀도 한때 자신의 목숨을 천금처럼 아꼈던 인간이었다는 점,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 화를 내리는 것이 귀신의 정도(正道)라는 점, 지극히 신령한 존재인 인간을 짐승처럼 대하는 점, 그리고 이러한 패악질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절대적인 하늘의 존재를 조목조목 거론하여 역귀를 몰아세우고 있다. 이와 같은 비판과 협박을 통해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던 역귀는 나약하고 가련한 존재로 강등되는데, 여기에는 현실의 참상에서 심리적인 위안을 찾아 극복하려는 기제가 작용한 것이다.25)
 기실 유몽인의 제문뿐만 아니라 거개의 역귀를 쫓는 제문은 이러한 심리적 기제를 토대로 하고 있다. 공포의 두려움의 대상을 심리적으로 극복하고자 일부러 거세게 몰아붙이는 언술은 현실적인 치료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위안과 미래의 기대를 자연스레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민구(李敏求, 1589-1670), 〈역려행(疫癘行)〉처럼 전염병의 참상을 핍진하게 묘사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방식은 심리적인 공감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면, 유몽인의 제문과 같은 작품들은 공감과 더불어 심리적인 위안과 극복에 대한 희망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학귀를 쫓는 시를 지어 이 의원에게 보이다[截瘧詞示李醫]〉
 
으스스 한기 돌 땐 살갗이 싸늘하고
열이 펄펄 끓을 땐 간장을 조리는 듯
귀신은 약속한 듯 어찌 찾아온 것이며
복성은 성안을 어찌 두루 비추질 않나
이제 장차 한 뿌리 동삼을 가지고서
문밖으로 귀신 몰아 평안을 얻으리라26)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임신 중의 아내가 학질에 걸려 백여 일 동안이나 앓고 있는 상황에 서 병리학적인 치료를 담당하는 의원에게 학귀를 쫓는 내용으로 시를 보낸 것은, 현실적인 치료와는 별개로 심리적인 위안과 기대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17) 柳琹, 《於于先生年譜》. “家僮有病瘧者, 公作譴瘧詩, 朱書傅背, 病卽愈. 以其故紙, 傳相傅背, 湖西湖南已瘧者數百家.” 《於于先生年譜》의 번역은 다음의 글을 참고하였다. 안득용(2020), p.354.
18) 柳夢寅, 《於于集 권1》, 〈譴瘧鬼〉, 韓國文集叢刊 권63. “土伯盤囷九約身, 觺觺雙角拄穹旻; 龍脂亂沸千尋钁, 虎戟交摐萬甲神; 哆喙欱殘塵渤海, 張拳打破粉崑崙; 可憐水帝孱兒鬼, 星騖風馳地外淪.”
19) 尹愭, 《無名子集 詩稿 책3》, 〈西淸詩話云, 有病瘧者, 子美曰吾詩可以療之, 子璋髑髏血糢糊, 手提擲還崔大夫, 誦之果愈. 此可謂鬼亦畏詩, 然子美詩云瘧癘三秋孰可忍, 又云三年猶瘧疾, 然則獨畏其詩而不畏其人耶? 抑好事者爲之耶? 余亦爲小鬼所困, 詩以嗔之.〉, 韓國文集叢刊 권256.
20) 제문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祭儀는 다음과 같다. 柳夢寅, 《於于集 後集 권4》, 〈西江村民祭癘疫鬼文〉, 韓國文集叢刊 권63. “봄날 얼음이 반쯤 녹고 찬 달빛이 희미한데 강산에는 쓸쓸히 밤이 깊어가고 마을에는 고요히 인적이 없다. 이에 壇塲을 만들어 깨끗이 쓸고 퉁소와 피리를 일제히 울려 뭇 영령들을 불러 강림하게 하여 향기 나고 맛 좋은 제수를 바치노라.(春氷半釋, 雪月微明, 江山肅肅而夜闌, 籬落寥寥而人定. 玆爲壇塲淨掃, 簫管齊鳴, 引羣靈以降臨, 歆庶羞之芬苾.)”
21) 柳夢寅, 위의 글. “想夫人亡爲鬼, 精化曰魂. 旣明暗之殊塗, 天理自別, 知神姦而象物, 聖謨孔昭. 粤爾癘疫爲名, 古稱陽强之氣. 伯有作孽於鄭國, 實沈爲祟於晉時. 委蛇惡聞乎車音, 桓公九合而覇, 彭豕悲啼而人立, 齊后一箭以殲. 神或憑人, 妖不勝德.”
22) 柳夢寅, 위의 글. “竊念今者四時失序, 二氣愆和. 冬濘漫塗, 寧思卒歲之服, 春寒裂石, 不禁砭膚之威. 薰蒸溟嶽之溫氛, 浸染溝渠之惡祲. 兵戈致殪, 鳥影不過於龍沙, 刑獄多寃, 釰光遙橫於牛斗. 加以火雲千里, 何草不枯? 水漲三湖, 去年尤甚. 巨室拔宅而逋稅, 齊民把瓢而吹箎. 爾於是時, 乘人凍飢, 逞厥炎熾. 搜營衛而煽虐, 比屋如焚, 驀隣族而波漸, 無遠不届. 編茆結幕, 庚癸誰資? 抵頂交肢, 胾肉相藉. 蓬頭垢面, 擧作狐犬之餐, 溢郭塡坑, 庸有��梩之揜?”
23) 柳夢寅, 위의 글. “顧顯晦之一理, 推死生則同源. 昔爾有六腑百骸, 比千金而自惜, 今人無十家三瘳, 忘一視而同仁. 安知地獄之或有? 盍念天紀之難干? 爾不聞乎福善禍淫神道之正, 戕人賊物, 陰誅心加. 冥官愛人, 固知用法平等, 上帝臨汝, 何聽枉殺無辜? 視至靈如獮禽, 胡寧忍此? 仰明畏之懸鑑, 可不懼哉?”
24) 제문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柳夢寅, 위의 글. “지금 우리들이 강가에 제사 지내는 자리를 베풀어 음악을 연주하고 제수를 진설하니, 수륙의 좋은 진미는 정갈하고 강가의 제사 지내는 휘장은 선명하구나. 마을에선 술과 술잔을 마련하여 성대한 전별연에 취하고 배불리 먹고, 神巫가 대신 말하여 곡진하게 타일러 주선한다. 回祿[불귀신의 일종]은 붉은 깃발의 위의로 너를 인도하고, 祝融[불귀신의 일종]은 朱雀이 이끄는 수레를 너에게 빌려줄 것이다. 북방으로 가서 하늘의 징벌을 돕고, 남방으로 가서 스스로 불의 근본으로 돌아갈지어다. 춤추고 노래하는 뭇 도깨비들이 대오를 이루고, 물고기와 새로 만든 음식, 좋은 술 따위의 온갖 진미가 모두 구비되어 있다. 멀리 전송함에 넉넉한 양식을 준비했으니 곧장 길을 떠나 돌아보고 그리워하는 한이 없도록 할지어다. 쟁쟁 종소리와 둥둥 북소리에 흡족하게 대우한 연회를 이미 다 했으니, 덜컹덜컹하는 수레와 히잉대는 말을 타고 떠나면 어찌 가는 길에 막힘이 있겠는가. 흠향할지어다.(今我乃臨江
設筵, 命樂陳饌, 水陸之佳珍蠲潔, 汀洲之供帳明鮮. 閭里備壺觴, 有勝餞而醉飽, 神巫代言語, 盡善誘而周章. 回祿導汝以赤幡之儀, 祝融假汝以朱雀之馭. 畀北可助於天討, 圖南自反於火根. 抃舞歌謳衆魅爲伍, 羽鱗醍盎百味所俱. 送遠有糗粻之饒, 卽路無顧戀之恨. 鐘喤喤皷考考, 旣盡欵遇之懽, 車轔轔馬蕭蕭, 豈有行路之阻? 尙饗.)”
25) 역귀의 하찮고 보잘것없음을 피력하고 그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내쫓아버리려는 심리적 극복의 과정은 鄭蘊의 〈逐瘧鬼文〉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鄭蘊, 《桐溪集 권2》, 〈逐瘧鬼文〉, 韓國文集叢刊 권75. “너는 너희 무리를 거느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빨리 달아나거라. 너는 너의 동기를 구할 수 있게 되고 나에게는 좀도둑의 침해가 없을 것이다. 듣지 않는 다면, 나는 장차 바람 수레를 어거하여 구름 기를 드날리며 천문을 밀치고 곧장 들어가서 너의 죄를 옥황상제께 고소하련 다. …… 조정이나 시장에 조리를 돌리고 밝고 드러난 자리에 너의 시체를 늘어놓으리라. 몸은 번개 칼로 베어지고 뼈는 우레 수레에 가루가 되리라. 반드시 남아 있는 종자까지 없애고 말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汝率汝屬, 亟走莫顧. 在汝有同氣之求, 於我無蠹賊之害. 否者, 吾將御風輿揚雲旌, 排天門而直入, 訴汝罪於帝庭. …… 徇於朝市之間, 肆諸明顯之地. 身膏電斧, 骨粉雷車. 必使無遺種乃已, 雖欲噬其臍得諸.)” 
26) 丁若鏞, 《與猶堂全書 第一集 第一卷》, 〈截瘧詞示李醫〉, 韓國文集叢刊 권281. “寒蔌簌洒肌肉, 熱熇熇煎肺腸; 鬼耶胡能來有信, 星耶何不徧一城; 逝將一條孩兒蔘, 長驅出門得安平.”
 

Ⅳ. 오늘날 교육적 의미와 한문 교과 활용 방안

 이 장에서는 2015년 개정 한문과 교육과정을 참고하여, 위에서 살펴본 작품들의 교육적 의미와 한문 교과 활용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문》, 《한문Ⅰ》, 《한문Ⅱ》등의 한문 교과는 모두 ‘한문과 인성’, ‘한문과 문화’의 내용 체계를 갖추고 있다.27) ‘한문과 인성’의 핵심 내용은 “한문 기록 속에는 현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따라서 현재적 의미에서 가치가 있고 실천 가능한 내용을 한문 자료에서 정선하여 학습함으로써 건전한 가치관과 바람직한 인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한다.”이고, ‘한문과 문화’의 핵심 내용은 “한문 기록에 담긴 우리의 전통문화 및 한자 문화권의 문화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익혀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한자 문화권 내에서의 상호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킬 수 있는 태도를 형성하도록 한다.”이다. 아울러 각각에 해당하는 성취 기준을 살펴보면, ‘한문과 인성’은 “[9한04-01] 한문 기록에 담긴 선인들의 지혜, 사상 등을 이해하고, 현재적 의미에서 가치가 있는 것을 내면화하여 건전한 가치관과 바람직 한 인성을 함양한다.”이고, ‘한문과 문화’는 “[9한05-01] 한문 기록에 담긴 우리의 전통문화를 바르게 이해하고,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문화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태도를 형성한다.”, “[9한05-02] 한자문화권의 문화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통해 상호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키려는 태도를 형성한다.”이다. 이 가운데 ‘한문과 인성’의 측면으로서 건전한 가치관과 바람직한 인성을 형성하는 데 이정귀의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을 활용할 수 있으며, ‘한문과 문화’의 측면으로서 한문 기록에 담긴 우리의 전통문화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유몽인의 〈서강의 마을 사람을 위해 역귀에게 고하는 제문〉을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이정귀의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은 외적인 고통을 내적인 성찰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선인의 지혜와 사상을 읽을 수 있다. 현재의 불우하고 답답한 상황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함으로써 본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오늘날 맹목적으로 사회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일부 현대인들이 바람직한 정신과 인성을 고양하는 데 참고할 만한다. 또한 유몽인의 〈서강의 마을 사람을 위해 역귀에게 고하는 제문〉은 작품의 내용과는 별개로 우리나 라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참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기우제(祈雨祭)와 같은 공적인 제의는 물론이 고 홍수와 가뭄, 전염병과 같은 천재(天災)와 인재(人災)에 대처하는 전통 시대의 제의를 이해하는 한편 이에 수반하는 전통적인 글쓰기인 제문의 형식과 체재, 주제와 내용을 다층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한편 《한문Ⅱ》의 내용 체계 가운데 ‘한문의 독해’에는 “[12한문Ⅱ02-06] 한문 산문의 다양한 문체와 서술 방식을 통해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한다.”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성취기준’ 에 대한 해설은 아래와 같다.28)
 
한문의 문체(文體)는 언어의 형식적 특징에 따라 크게 산문(散文), 운문(韻文), 변문(騈文)으로 나눌 수 있다. 변문(騈文)은 운문(韻文)처럼 압운(押韻)을 하지는 않지만 산문(散文)과 달리 성률 (聲律)과 대우(對偶)를 강구하는 문체를 말한다. 단, 고등학교 한문과 교육과정에서는 한시(漢詩) 에 포함시켜 다루기 곤란한 일부 운문(韻文)이나 변문(騈文) 또한 한문 산문의 문체에 포함시켜 다룰 수 있다. …… 이외에 주목해야 할 문체로 사부(辭賦)와 소설(小說)이 있다. 고등학교 한문과 교육과정에서는 이 사부와 소설 또한 한문 산문의 문체에 포함시켜 다룰 수 있다.
 
 위의 ‘성취기준’에 해당하는 작품은 이정귀의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이다. 이 글은 형식적으로 변문(騈文)과 산문(散文)을 함께 구사한 작품인데, 4⋅6의 대구와 전거(典據)를 활용한 변문의 방식, 논리적 맥락에서 정연하게 포치한 산문 구식(句式)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한 이 작품은 한유의 〈송궁문〉을 우리나라 문인이 어떻게 변용하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므 로, 중국 고전과 우리나라 고전의 친연성을 설명하기에도 유효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27) 교육부(2015), 고시 자료. 이하 한문과 교육과정의 내용, 체계, 성취기준 등도 모두 이 고시 자료를 참고하였다.
28) 《한문》⋅《한문Ⅰ》과는 차이를 보인다. 《한문》은 “[9한02-06] 한문 산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한다.”이고, 《한문Ⅰ》은 “[12한문Ⅰ02-07] 한문 산문의 다양한 서술 방식을 통해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한다.”이다. 동일한 ‘한문의 독해’ 내용 체계이지만, 《한문Ⅱ》는 심화 과정이기 때문이다.

Ⅴ. 맺음말

 이상에서 전통 시대 역병에 대한 문인지식인의 인식, 문학적 대응 방식, 오늘날의 교육적 의미와 한문 교과 활용 방안을 순서대로 고찰하였는데,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에는 극복의 측면에서 전염병을 인식한다면 전통 시대에는 공포와 두려움의 측면에서 인식하였다. 백신을 통해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한 오늘날에 반해 전통 시대에는 전염병을 신이하고 불분명한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물론 전통 시대에도 병리학을 통해 전염병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효력과 믿음에 있어서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전통 시대에는 병리학적인 치료와 더불어 각종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나례와 같은 민속 의식을 병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인지식인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문학 작품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조정의 안팎에서 국가나 지역 단위에서 제문을 짓기도 하였고 자신과 마을 단위에서 제문, 한시 등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였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역귀나 여귀를 대상으로 한 제의에 동원되는 제문은 꼭 천편일률적인 것만은 아니었고, 역귀를 협박하여 쫓아버리 기 위해서, 혹은 설득하고 달래어 떠나보내기 위해서 창작되는 제문은 작자의 문학적 역량에 따라 그 실용적인 목적과는 달리 그 자체로 수준 높은 문학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역귀를 대상으로 제문이나 한시, 송서 등을 창작할 경우에는 한층 더 높은 문학성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이른바 문학 치료와 같이 문학 창작 행위를 통해 정신적⋅심리적 차원에서 치료하는 지점까지 나아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양상과 특징을 살필 수 있는 글이 이정귀의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과 유몽인의 〈서강의 마을 사람을 위해 역귀에게 고하는 제문〉이다. 또한 이 두 글은 전염병에 대처하는 문학으로서의 글쓰기를 설명하기에 용이하며, 오늘날 교육적 의미와 함께 실제 한문 교과에 활용하기에도 유효하 다. 우선 이정귀의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은 주인으로 등장하는 이정귀와 학질에 걸리게 한 학귀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신을 괴롭히는 추상적인 존재를 불러서 호소하 고, 추상적인 존재가 등장하여 호소하는 대상을 외려 설득하고 감화하는 서사이다. 이러한 설정은 한유의 〈송궁문〉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사실 한유의 〈송궁문〉에 등장하여 말하는 궁신이든, 이정귀의 글에 등장하여 말하는 학귀든 작자의 목소리이다. 학귀가 언급한 학질의 신체적 증상과 부작용, 학질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과 결과 등은 이정귀가 학질을 앓은 이후에 실제로 겪은 사실과 소회이고, 학귀가 언급한 정신과 기운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이정귀가 깨달은 바를 학귀의 입을 빌려 개진한 것이다. 정신적 수양과 기운의 조화는 신체적인 요건과 치료법을 넘어서 자아 성찰을 통한 정신적 치유인 셈이다. 또한 이 글은 자아의 성찰이 국가의 병폐를 치유하는 묘책과 연결된다. 이정귀가 학귀로부터 나라의 치료법까지 들은 것을 특히 강조하여 좌우에 기록하겠다는 다짐은 단순히 자신이 앓고 있는 학질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적 문제까지 주제를 확대하여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이렇듯 이정귀의 〈학질을 떠나보내는 글〉은 형식적 측면에서는 한유의 〈송궁문〉을 변용한 점, 내용적 측면에서는 개인의 자아 성찰을 통해 국가에 대한 고민까지 확대한 점에서 그 문학성을 간취할 수 있다.
 한편 유몽인의 〈서강의 마을 사람을 위해 역귀에게 고하는 제문〉은 여역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면서 창작한 글이다. 역귀로 고통 받는 인간의 참상을 핍진하게 형상화하 고 역귀의 잘못을 비판하는 내용도 신랄하고 구체적이다. 이러한 비판과 협박을 통해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던 역귀는 나약하고 가련한 존재로 강등되는데, 여기에는 현실의 참상에서 심리적 인 위안을 찾아 극복하려는 기제가 작용한 것이다. 기실 유몽인의 제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역귀를 쫓는 제문은 이러한 심리적 기제를 토대로 하고 있다. 공포의 두려움의 대상을 심리적으로 극복하고자 일부러 거세게 몰아붙이는 언술은 현실적인 치료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위안과 미래의 기대를 자연스레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 두 작품들의 오늘날 교육적 의미와 한문 교과 활용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이정귀의 글은 외적인 고통을 내적인 성찰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선인의 지혜와 사상을 읽을 수 있다. 현재의 불우하고 답답한 상황을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함으로 써 본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바람직한 정신과 인성을 고양하는 데 참고할 만한다. 또한 변문과 산문을 함께 구사한 작품이기 때문에 4⋅6의 대구와 전거를 활용한 변문의 방식, 논리적 맥락에서 정연하게 포치한 산문 구식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다. 아울러 한유의 〈송궁문〉을 우리나라 문인이 어떻게 변용하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므로, 중국 고전과 우리나라 고전의 친연성을 설명하기에도 유효한 자료이다. 한편 유몽인의 글은 전염병과 같은 천재와 인재에 대처하는 전통 시대의 제의를 이해하는 한편 이에 수반하는 전통적인 글쓰기인 제문의 형식과 체재, 주제와 내용을 다층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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