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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363(Print)
ISSN : 2465-8138(Online)
Han-Character and Classical written language Education No.51 pp.251-279
DOI : https://doi.org/10.15670/HACE.2021.51.9.251

Self-elegy as a Material for Death Education

Lim, Junchul
*Department of Classical Chinese, Korea University / catcher1@korea.ac.kr
2021년 10월 08일 2021년 11월 12일 2021년 11월 24일

Abstract

This article explores the value of self-elegy from the perspective of thanatology and death education. Self-elegy is a type of writing that is distinct from the traditional perception of death in East Asia, but there are many implications for today's death education in that it is an example of taking issue with one's own death. Based on Elizabeth Kübler-Ross's death acceptance stages, self-elegy is generally written at the last stage of accepting death, showing a sense of willingness to accept death or accepting death as a meeting with parents and ancestors. In particular, it is worth paying attention to the presentation of specific ways of one’s own funeral as an consideration for the bereaved. Kübler-Ross’s concept of "post-life" differs from East Asia's unique view of the soul, but in self-elegy, we can find the thoughts about the eternity of existence from another perspective, such as "Sanbuxiu(三不朽)", and some statements about near-death experience. This can also be seen as one's own "wishful thinking," but it also can be used to break the taboo on death of modern people. Death education using self-elegy is similar to writing will testaments, but self-elegy can lead people to focus more on one's own death. While the contents of the will usually focus on organizing one's life and leave the last words to family members and frinds, self-elegy can be a more faithful process to the virtue of "last growth" through death by focusing more on one’s death itself. Self-elegy is highly valuable as a material for death education in that it deviates from inertial perception on death and illuminates death from a completely different perspective. Self-elegy can be effectively used as an educational material to remove excessive fear of death for the modern people.

죽음교육의 측면에서 본 자만시의 가치

임준철**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catcher1@korea.ac.kr

초록

이 글은 自挽詩를 현대 죽음학과 죽음 교육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여 그 가치를 탐색한 것이 다. 자만시는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 죽음 인식 일반과는 변별되는 글쓰기지만, 자신의 죽음을 정 면으로 문제 삼은 사례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죽음교육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übler-Ross)가 말한 죽음 수용 단계들을 기반으로 자만시를 살펴보면, 자만시는 대체로 죽음 수용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어지며, 의연히 죽음을 수용하려는 의식 을 보여주거나, 죽음을 부모 및 조상과의 만남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이 많이 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상장례에 대한 구체적 실행 방식의 제시는 남은 이들을 배려하는 자세로서 주목할 필 요가 있다. 퀴블러 로스가 제기한 ‘사후생’의 문제는 동아시아 고유의 영혼관과는 차이가 있지만, 자만시에선 ‘三不朽’와 같이 또 다른 관점에서 존재의 영원성을 고민했으며, 드물게 근사체험에 가 까운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이는 자신의 ‘소망 투사’(wishful thinking)라고도 볼 수 있지만 현대인 의 죽음 터부를 깨는 데도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자만시를 활용한 죽음교육은 기존의 유언장 써보기와도 유사하지만 자만시 쓰기가 좀 더 자신의 죽음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언장의 내용이 대개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고 가족과 주변 인들에게 남기는 말로 구성되는 반면, 자만시는 나의 죽음 자체에 좀 더 집중하여 죽음을 통한 ‘마 지막 성장’이란 덕목에 좀 더 충실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자만시는 관성적 죽음인식을 벗어나 있거나 전혀 다른 시각에서 죽음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죽음 교육 자료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현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걷어내기 위한 교육 자 료로서 자만시는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Ⅰ. 문제의 소재

 이 글은 自挽詩를 현대 죽음학과 죽음교육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여 그 가치를 탐색한 것이다. 현대 죽음학은 러시아의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가 ‘죽음학(Thanatology)’이란 용어를 쓰면 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죽음학’은 ‘죽음교육’을 포괄하는데, 서양의 죽음교육은 1950년대 중반 죽음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함께 비롯하여, 미국의 파이펠(Herman Feifel)이 출간한 《죽음의 의미(The Meaning of Death)》가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60년대 이후 고등교육기관에 다양한 교과목들이 개설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1)
 서구 학계의 죽음에 대한 관심은 고전 문헌에 나타난 죽음 인식의 변화를 다룬 필립 아리에스 (Philippe Ariès)의 《죽음 앞의 인간(L'homme Devant la Mort)》 등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중세 이래의 묘비명과 유언장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하여 이 문제에 접근하였는데, 그보다 앞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같은 학자가 이미 《중세의 가을(Le Dèclin du Moyen Age)》에 서 유사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구에서 일찌감치부터 이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졌 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동아시아의 경우 죽음에 대한 포괄적 연구는 영성한 편이다. 余英時나 마이클 로이(Michael Loewe)의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2) 정작 한문 자료 중 다수를 점하는 죽음 관련 금석 및 문헌 자료를 집성한 연구는 찾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동아시아 지식인의 죽음과 관련된 특징적 글쓰기 중의 하나인 자만시에 대한 죽음학적 검토는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서구의 전통과 시각이 담긴 현대 죽음학은 동아시아의 전통적 죽음인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격차를 감안하더라도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죽음학의 방법론을 빌리는 것은 논의의 시작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학회의 기획주제는 “疫病과 치유에 관한 한문 자료, 그 교육적 의미”이다. 이 글은 병과 치유라는 문제와는 조금 다른 층위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죽음은 병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이고, 죽음에 대처하는 자세는 정신적 치유를 포괄하고 있기에 궁극적으로 양자는 연결될 수밖에 없다.
 
1) 전병술, 〈왜 죽음교육이 필요한가〉, 한국죽음학회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2013), p.134.
2) 위잉스(2007), pp.158-164; 마이클 로이(1987), pp.1-220.
 

Ⅱ. 자만시 속의 죽어감과 죽음

 자만시는 반드시 실제 죽음을 앞두거나 맞이할 때 지어지는 것은 아닌 만큼, 인간의 죽어감과 죽음이 반드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만시에서 상장례를 통해 죽음을 의례화하고 무덤을 이미지화하는 일련의 과정은 삶을 죽음과 연속선 상에서 이해하고 정리하는 행위로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오늘날의 죽음은 병원과 장례식장이란 공간을 통해 삶과 철저히 격리되고, 죽음에 대한 생각도 기약 없이 유보되기만 한다. 미국의 의학자 누랜드(Sherwin B. Nuland)는 죽음의 진실을 똑바로 바라봄으로써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며, 그런 뒤에야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3)
 자만시는 비록 허구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되새김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복합적이면서 다중적인 나는 나의 삶과 죽음을 객관화하는 자아의 페르소나(persona)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분명한 자의식을 드러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필자는 앞서 자만시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죽음 대처 방식에 대해 다음 네 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4)
  
3) 셔윈 B. 누랜드(2003), pp.14-15.
4) 졸저(2019), pp.335-339.
  
 
  첫째, 본래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만 가능했던 만시란 글쓰기를 자신의 문제로 자리바꿈한 것이다. 이는 죽음을 타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외면하거나 미루어두었던 자세로부터 극적 인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게 만든다.
  둘째, 죽음보다는 삶에 대한 성찰을 우선시했던 경향과 달리 죽음 자체를 시적 주제로 삼음으 로써 나의 죽음을 진실한 고민의 대상으로 자리바꿈할 수 있게 된다.
  셋째, 본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1인칭의 죽음인 나의 죽음을 2인칭이나 3인칭의 죽음인 타인 의 죽음과 같은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나의 죽음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된다.
  넷째,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나의 죽음과 상장례는 죽음을 경험의 대상으로 만들어, 나의 죽음 을 당겨 경험하고 예비할 수 있게 만든다. 
 따라서 자만시는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의 일반적인 죽음 인식이나 대처 방식과는 분명히 변별되 는 태도이며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자만시는 우리에게 “더 이상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나의 것임을 받아들여라!”라고 말하는 문학 양식으로서 그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듯하다. 비록 이런 자만시의 정신이 문학사에서 발전적으로 전개된 것만은 아니고, 혼선을 빚거나 엉뚱한 방향으 로 변개되기도 했지만, 자만시는 나의 죽음을 정면으로 문제 삼은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죽음교육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오늘날 의학계에선 실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밝혀 인간이 어떻게 죽는가를 통해 죽음을 준비하게 한다. 또 다양한 영역의 학자들이 ‘죽음학’ 연구를 통해 현대인이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논의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자만시는 전근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죽음을 현명하게 맞이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을 수 있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고 특별히 예민한 감성을 지닌 지식인들에 한정된 것이기는 하나, 그들 나름대로 죽음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식으로 서 이 글쓰기는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알려진 것처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übler-Ross)는 죽어가는 수많은 환자들과의 면담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에서 말기 환자들의 죽음 수용 단계를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5)
 
 5)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2008), pp.65-224; 이와 달리 알폰스 디켄(Alfons Deeken)은 총 6단계로 죽음 수용 단계를 설정 한다. 제1단계 부정(denial), 제2단계 분노(anger), 제3단계 타협(bargaining), 제4단계 우울(depression), 제5단계 수용 (acceptance), 제6단계 기대와 희망(expectation and hope) 알폰스 디켄(2008), pp.39-43. 디켄의 죽음 수용 단계는 퀴블 러-로스보다 한 단계가 더 설정되어 있다. 그는 기독교 신자처럼 사후의 영원한 생명을 믿는 사람의 경우에는 ‘수용’ 단계 에 머물지 않고 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한다는 기대와 영원한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을 가진 태도를 보이는 경우 도 많다고 설명했다. 
  제1단계: 부정과 고립
  제2단계: 분노
  제3단계: 협상
  제4단계: 우울
  제5단계: 수용
 
 자만시는 엄밀하게 말해 진짜 나의 ‘죽음’이 아니라 죽는 것을 상상하고 스스로 애도한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자만시의 이런 특성은 죽음을 준비하고 대처하는 마음 자세와 관련이 깊은 만큼, 죽음 수용의 일부 단계와 연결지어 해석할 수 있다.
 퀴블러-로스가 말한 죽음 수용의 단계 중 부정과 고립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밀어내는 단계를 말한다. 자만시에서 부정과 고립의 제1단계가 드러나는 경우는 정치사회적 문제와 관련될 때가 많다. 그 상황은 대체로 죽음을 부정하기보다 외로움을 호소할 때가 많다.
 다음 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 지는 하늘은 먹물 뿌린 것 같고,
  깊은 산골짝은 마치 구름 드리운 듯.
  왕과 신하의 천년 뜻이,
  외로운 무덤 하나로 남아 서글프구나.
  日落天如墨, 山深谷似雲.
  君臣千載意, 惆悵一孤墳.6)
 
6) 許筠, 《國朝詩刪》 권1 〈自挽〉, 아세아문화사, p.245; 졸역(2014), pp.26-28.
  
 奇遵(1492-1521)이 지었다고 전하는 이 시는 기묘사화로 함경도 穩城에 유배갔을 때 창작되었다. 사화기에 기준과 같은 처지의 인물들이 느낀 ‘외로움’은 생물학적 죽음을 넘어 사회적 타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그려지는 외로운 죽음이란 정치현실로부터 배제된 자의 고통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퀴블러-로스의 환자들과 비교해 볼 때 좀 더 사회적 관계란 측면에서 죽음을 인식하 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독일의 역사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는 외로움 (Einsamkeit) 중 가장 참혹한 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산 사람들의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어 어쩔 도리 없이 죽음으로 내몰렸을 때라고 설명한 바 있다.7) 퀴블러-로스가 면담한 시한부 환자들과는 달리 이런 종류의 자만시는 絶命詩와도 유사해서 죽음을 각오하면서도 고립감에 몸서리를 친다.
 한편 자만시 중엔 죽음 수용의 제 단계를 함께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盧守愼(1515-1590)이 세 차례에 걸쳐 쓴 〈自挽〉이 그런 예다.8) 명종·선조대 활동한 걸출한 시인 중의 한 사람인 노수신은 모두 세 수의 자만시를 남기고 있다. 시인은 乙巳士禍로 인해 무려 19년간 유배 생활을 했는데, 그가 남긴 자만시들도 모두 이 기간에 지어졌다. 첫 번째 작품은 33세, 두 번째 작품은 38세 무렵, 마지막 작품은 유배가 끝나갈 무렵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쓴 시에서 사약이 내려질 것을 예상하고 자신의 죽음을 억울해하고 있는 반면,9) 5년 뒤 지어진 두 번째 수에선 상대적으로 자기 연민과 비탄의 정회가 좀 더 뚜렷하다. 
 
7) 노베르트 엘리아스(1998), p.83-84.
8) 졸역(2014), pp.29-36; 졸저(2019), pp.164-170.
 
9) 실제로 이 무렵 자신이 죽는 악몽을 꾸기도 할 만큼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同 夜記夢〉이란 시에 자신이 죽으며 미소를 띠었다는 강박적 꿈의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하다. 
 
  오 년 동안 바닷가 나그네 생활하며,
  단 하룻저녁도 가지 않은 적 없었지.
  종은 黔婁같은 내 머리에 감히 휘장 덮고,
  관리는 돌처럼 굳은 시신 검안하네.
  불혹의 나이라 요절한 것 아니고,
  스스로 속이지 않아 도륙은 면했구나.
  애통한 것은 연로한 양친이,
  구존하신데도 헤어져야 한다는 것.
  五年客海上, 一夕無不之.
  奴敢幠黔首, 官須檢石屍.
  非殤當不惑, 免戮爲毋欺.
  所慟雙親老, 相離在世時.10)
 
10) 盧守愼, 《穌齋集》 권3, 〈自挽〉(六月), 한국문집총간 35, p.120.
 
 한편 유배 후반기에 지어진 걸로 추정되는 마지막 시는 앞의 두 시보다 좀 더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면모가 두드러진다.
 
  스스로 뛰어난 사내라 말하지만,
  세상은 어리석은 사내라 일컫는구나.
  산하와 같이 큰 일만 눈에 들어올 뿐,
  잗달한 일 따윈 마음속에 없다네.
  선비는 장례에 술에 적신 솜이라도 올리길 바라지만,
  관리는 베로 덮인 시신이나 검시하리.
  외로운 혼 도리어 먼저 돌아가리니,
  두 동생과 부모님 이 세상 남겨둔 채.
  自謂奇男子, 時稱憃丈夫.
  山河眼孔入, 纖芥腹中無.
  士欲懷綿漬, 官須檢布幠.
  孤魂却先返, 兩弟二親隅.11)
 
11) 盧守愼, 《穌齋集》 권4, 〈自挽〉, p.149. 
 
 본래 노수신이 쓴 첫 번째 자만시는 윤원형 일파가 득세한 현실정치에 대한 부정의식을 기반으로, 양재역 벽서사건에 휘말린 자신의 결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12) 하지만, 유배가 길어져 감에 따라 자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비탄이 조금쯤 객관화된 자기연민으로, 종국엔 다시 자신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자세로 변해간다. 이는 퀴블러-로스가 말한 죽음 수용의 단계들을 연상시킨다. 물론 퀴블러-로스가 시한부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는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앞서 거론한 기준과 마찬가지로 노수신 역시 병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타살(사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이란 한계 상황을 두고 차츰 변해가는 노수신의 내면은 또 다른 층위의 죽음 수용의 단계를 우리에게 시사한다.
 비록 실제 臨終과 무관한 경우가 많지만 자만시에선 동아시아 전통 죽음관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樂天知命 의식을 바탕으로 죽음을 거부하기보다 순순히 받아들이려는 의식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13) 대표적인 사례로 17세기 영남의 학자 李埰(1616∼1684)의 자만시를 들 수 있다. 그는 “낙천지명하니 내 어찌 한스러우랴, 팽조와 안연도 지나간 옛 자취 되었다네.樂天知命吾何憾, 彭祖顔淵迹共陳.”(《蒙庵集》 권2)라고 썼다. 이채는 평생 벼슬하지 않고 경주에 머물면서 책과 꽃을 벗하며 은거했던 인물이다.14) 그의 자만시에선 이 樂天知命의 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요절도 장수도 하늘의 뜻이기에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만시 중 죽음 수용방식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작품은 한정적이다. 또한 완전히 가공의 상황도 설정될 수 있는 만큼 내용 모두를 시인의 실제 경험이라 볼 수도 없다. 다만 창작 배경을 담은 幷序가 달려 있거나, 실제 임종 무렵 지어진 작품들을 대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볼 수 있다. 
 
12) “塵世紛紛成古今, 齊名李杜亦奇男. 其冠浼我望望去, 所事逢人歷歷談. 一臥海中神自守, 獨行天外影無慙. 賈生能哭吾能笑, 俱享行年三十三.” 
13) 樂天知命은 《周易》 〈繫辭傳 上〉에 나오는 “하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명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樂天知命, 故不憂.)”라는 말에서 온 표현이다. 
14) 이채는 경주지역 사정과 신라시대 전설‧역사‧풍속‧문물 등을 담은 《東京雜記》를 편찬‧간행하기도 했다.
 
  崔奇南(1586-1669?) 〈도연명의 만시에 화운한 시 3장和陶靖節輓詩三章〉의 병서
  내 나이 예순 셋 되어 몇 해 전부터 왼편 귀가 먹어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 올해는 오른쪽 팔도 아파서 굽히지도 펴지도 못해서 침과 뜸으로 다스리고 복약도 해보았지만 병이 나아 지지 않으니 기력이 점점 쇠해짐을 깨닫게 되었다. 생노병사란 말이 참으로 거짓이 아니로구나. 신음하던 중 우연히 도연명 문집 중에서 자만시를 보곤 슬픈 감정이 일어 붓 잡고 그 운자를 따라 시를 쓰며 내 마음 달래본다.15)
 
   崔泰淳(1835-1910), 〈自挽〉의 병서
  기유년 5월 여름 나는 지병으로 인해 寓淵亭에서 앓고 있었다. 예전에 효과가 있던 약을 써보아 도 차도가 없으니 이미 여러 차례 병이 재발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건강은 쇠약해져 가고 쓸 약조 차 없건만 증상이 잦아들었다 심해졌다 하는 것이 반년 가량이 되어 간다. 스스로 생각컨대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율시로 자만시 한 수를 지어 써놓곤 죽음을 기다리 노라.16)
 
15) “吾年六十三, 數年前左耳聾, 不辨聲音. 今年右臂病, 不能屈伸, 連砭灸, 兼且服藥, 不差快, 氣力漸覺衰敗, 生老病死之語, 信 乎不誣. 呻吟中, 偶閱靖節集, 看到自挽, 悵然感懷, 命筆步其韻以自遣云.”
 
16) 崔泰淳, 《梅史遺稿》 권2, 경상대학교 문천각 소장본. “歲己酉夏五月, 余以宿祟, 爲苦寓淵亭, 試前效之藥, 而終未奏功, 蓋 此祟之闖發, 已三四次. 今則榮衛漸衰, 無藥可施, 時歇時劇, 殆將半歲矣. 自分似不能復起, 爲人乃作自挽一律, 姑書此以竢之.” 
 
 中人(閭巷)文學을 연 ‘六家’ 중 한 사람인 최기남과 조선말 최태순이 자만시에 붙인 병서다. 두 사람 모두 병으로 쇠약해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자만시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창작 동기는 자만시가 죽음 수용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어진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비록 실제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자만시란 주제의 특수성이 시인으로 하여금 죽음을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술하겠지만 글쓰기의 특성이 창작자로 하여금 죽음을 수용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자만시는 죽음교육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유리하다.
 한편 자만시에선 부모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관에 영향을 미친 경우들이 발견된다. 이런 사례들은 유교의 효 중시 풍조와 관련이 깊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李敏輔(1717-1799)의 경우는 특징적이다. 그는 〈부모님께서 연달아 세상 뜨시고 해 바뀌어, 다시 己未年이 돌아옴을 보고, 해가 또 庚申年으 로 이어지려 하니, 놀랍고 비통하여 죽고만 싶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택당집》의 〈절필〉시 에 차운하여 도연명이 자만한 의미를 대략 붙이다.愍凶逢新, 復見己未讐, 年又接庚申, 驚慟摧怛, 求死不得, 次澤堂集絶筆韻, 畧寓淵明自挽之意〉17)라는 긴 제목의 자만적 작품을 남기고 있다. 시는 1799년 기미년에 지어졌는데, 그가 1월 6일에 별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종 무렵이거나 며칠 전에 이 자만시를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83세 노인이 자신의 삶을 결산하는 시를 쓴 것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60여 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죽고 싶은 마음에 썼다는 창작 동기가 이채롭다.18)
 유의할 점은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에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켈레비치 (Vladimir Jankélévitch)는 죽음을 타인의 죽음인 3인칭의 죽음과 부모의 죽음인 2인칭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죽음인 1인칭의 죽음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지 못하다가, 2인칭의 죽음인 부모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1인칭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게 된다고 한다.19) 이민보의 자만적 작품은 부모님의 죽음이란 2인칭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인 1인칭의 죽음을 예감하기까지의 경로를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자만시의 죽음이 다른 무엇보다 가족의 죽음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임을 확인케 한다.
 퀴블러-로스는 취학 전 아동은 어머니나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에 가장 최악의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죽음이 하나의 과정적인 사건으로 지각될 수 없으며 그 아이들은 죽음을 영원한 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이곳저곳에서 사라져버린 부모를 찾으려 하고 별별 방법을 다 써서 죽은 부모들을 되돌아오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20) 또 사춘기 이전에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행동으로 그 슬픔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고 자신을 스스로 위험스러운 상황 속으로 몰아넣는다고 설명한다.21) 이민보의 사례는 어린 시절 양친을 잃은 충격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영향을 미침을 보여주는 사례로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교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조선시대 자만시에선 특히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문의식으로 이어져 죽음을 선조와의 만남으로 연결지어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17세기 영남에서 예학자로 명망이 높던 李惟樟(1625-1701)의 “선대의 무덤 아래 몸 누일 수 있는 것 얼마나 다행인가, 무덤에 서 영원히 즐겁게 지내리라.何幸托身先壟下, 幽堂千古永怡怡.”(《孤山集》 권30)에서 이런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22)
 이상 언급한 자만시의 죽음 수용 단계가 가장 종합적으로 발견되는 작품으로 趙榮順(1725-1775) 의 자만적 작품 〈絶筆〉을 들 수 있다. 이 시는 조영순의 임종 무렵 창작되었는데, 첫 번째 수는 10월 13일 酉時(오후5시-7시)에 공주의 객사에서 임종 무렵 직접 썼으며(“十月十三日酉時, 在公州客館, 臨終親書”), 두 번째 수는 같은 날 밤에 조카 우철을 시켜 썼고(“十月十三日夜, 命從子 宇喆書”), 세 번째 수는 이튿날 子時(오후 11시-오전 1시)에 아들 정철을 시켜 쓰게 했다.(“十月十四 日子時, 命貞喆書”)23) 마지막 시를 쓸 무렵엔 〈自誌銘〉도 함께 남겼다.24) 죽음이 다가오는 과정에 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록하고자 했던 시인의 자세가 자만시의 죽음 수용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곧 死者가 될 시인이 사후의 상장례에 대한 당부를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수에선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 장례 치를 때 꼭 예법대로 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25) 자만시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상장례 상황 설정을 전제로 하지만, 상장례 실행 방식에 대한 구체적 지시는 죽음 수용과 함께 남은 이들을 배려하는 자세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현대의 죽음교육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7) 李敏輔, 《豊墅集》 권5, 한국문집총간 232, p.406.
 
18) 이민보는 기미년(1739)과 경신년(1740) 생부인 李亮臣과 생모인 平山 申氏가 연이어 세상을 떴다.
 
19)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2016), pp.15-17.
 
20) 퀴블러-로스(2009), p.140.
 
21) 같은 책, p.153.
 
22) 이유장은 안동에서 태어나 朱熹와 李滉의 禮說을 分類하여 《二先生禮說》을 편찬하였고, 이황 등 영남 선배 학자들의 예학을 수용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23) 趙榮順, 《退軒集》 권3, 한국문집총간 속집 89, p.303.
 
24)〈自誌銘〉에 “을미 10월 14일 자시 임종 무렵 아들 원철에게 받아쓰게 했다.乙未十月十四日子時, 臨屬纊, 命子元喆受 書.”라는 말이 부기되어 있다.
 
25) “劉伶隨鍤便埋之, 達士形骸尙爾爲. 何必吾楹燈燭下, 三呼臯復正如儀?”
 
 

Ⅲ. 자만시에 표현된 사후생

 죽음학에서 ‘사후생’의 문제는 두 가지 시각의 접근방식이 있다. 하나는 주로 종교에 기반한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나 근사체험을 말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퀴블러-로스 등이 주장하 는 영혼의 육체이탈과 옮겨감으로서의 사후생이다. 퀴블러-로스는 “상징적으로 비유하자면 죽음은 그저 ‘한 집에서 더 아름다운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며, 고치(몸)가 회복 불가능의 상태가 되면 나비(영혼)가 태어난다.”고 설명한다.26) 그녀는 죽음은 다른 존재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며,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믿고 안 믿는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라고 주장한다.27)
 사후생의 문제는 객관적으로 분명히 입증할 수 없는 만큼 서구의 죽음교육에서도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더구나 하느님이란 인격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서구의 사후세계 인식과 달리 동아시아인의 생사관은 余英時가 일찍이 설명한 것처럼 ‘인간과 천지만물이 하나’라는 관점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에는 동아시아인들에게 영혼불멸에 관한 견해 도 없었고, 각각 천지의 기운을 대표하는 ‘魂’과 ‘魄’이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태어나고 죽는다고 생각했기에, 서구의 사후세계에 대한 일반적 사고와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혼과 백이 하나는 하늘로 올라가고 다른 하나는 땅으로 들어가며 결국 대지의 氣로 다시 돌아가므로 영원히 존재하는 개체가 아니란 점이다.28)
 하지만, 필자는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하더라도 사후생에 대한 고려는 죽음학과 죽음교육에 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단순히 존재의 소멸로 생각하는 것과 또 다른 시작으로 접근하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三不朽’와 같이 동아시아 사람들 역시 또 다른 관점에서 존재의 영원성을 고민했다. 조선시대 자만시를 읽어보면 지식인들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때 주로 문제 삼는 부분은 ‘三不朽’ 중 ‘立功’보다는 ‘立言’과 ‘立德’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29)
 그런 점에서 약간의 무리를 감수하고서라도 자만시에 드러난 사후생에 대한 생각들을 퀴블러-로 스의 관점에서 조망해 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는 차후 한국적 죽음학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죽음교육에 적용하는 데에도 필요불가결한 준비 단계라고 생각한다.
 퀴블러-로스의 사후생에 대한 주장에서 객관적 증거로 드는 것은 보고된 근사체험의 사례들이 다.30) 예외적인 사례지만 자만시에서도 근사체험과 유사한 경험들을 기록한 예가 있다.
 18세기 전라도 무주의 학자 朴致遠(1680-1767)의 자만시 말미에는 “어느 해 공의 병이 갑자기 사경에 이를 정도로 악화되어 자만시를 남겼는데, 얼마 후 다시 살아났다.歲某甲, 公病猝欲幾殊, 有此輓, 須臾乃甦.”라는 기록이 부기되어 있다.31) 죽음이 곧 닥쳐올 것이라 생각한 시인이 자만시를 쓰고 다시 살아났다는 기록은 중국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청대 錢泳의 《履園叢話》에는 趙同鈺이 란 인물의 사례가 실려 있다. 조동옥은 꿈에서 어떤 이가 백일 안에 죽을 것이란 말을 듣고 깨어난 뒤 괴이하게 여겨 자만시를 짓고 죽음을 대비했는데, 삼개월이 지나고도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32) 이런 사례들은 물론 오늘날 보고된 근사체험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우연한 일치겠지 만 자만시가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인 동시에 죽음 앞에서 생명을 각성시키는 효과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다만 박치원의 경우는 소생했다는 기록을 볼 때 오늘날 이야기하는 근사체험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체험의 내용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다음에 볼 박치원의 자만시는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기 위해 썼던 자만시 이후의 일화가 함께 전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26)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2009), p.18.
 
27) 같은 책, 17면.
 
28) 위잉스(2007), pp.158-164; 마이클 로이(1987), pp.1-220 등. 위잉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에 따라 중국 고대에 는 ‘천당’과 ‘지옥’에 관한 상상이 있었다 할지라도 충분히 발달되지 못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세상이었으며, 천당과 지옥 역시 인간세상의 연장이다. 생전세계와 사후세계의 관계가 일종의 不卽不離의 특성을 보여 준다. 또 동아시 아의 사상가들은 줄곧 영혼불멸의 관념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영혼불멸에 의지하지 않고도 인생을 적극적으 로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 공을 이루며, 덕을 세우고, 학설을 내세우는 ‘三不朽’가 동아시아인들의 ‘영생’에 대한 확신이다. 이런 생사관에 입각하면 모든 개인은 小我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곧 나의 삶을 잘 영위하는 것이 바로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이란 사고방식이 여기서 나온다.”
 
29) 崔有淵(1568?-?)의 〈自挽〉 “이 내 생애 문장과 도덕으론, 보잘것없어 가죽조차 남기지 못하네.文章與道德, 落落未留 皮.” 같은 구절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崔有淵, 《玄巖遺稿》 권1, 한국문집총간 속집 22, p.511.
 
30) 퀴블러-로스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텔레비전 스크린과 매우 유사해 보이는 어떤 것 앞에 서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당신은 판결을 내리는 신에 의해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해왔던 모든 행동과 말, 모든 생각들을 되돌아보게 됨으로써, 당신이 당신 자신을 심판하는 기회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온 방식 에 따라 자기 자신이 지옥을 만들거나 천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앞의 책, p.76. 근사체험에 대해선 소망사고 (wishful thinking)의 투사일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 죽는 사람은 절망스럽고 외롭고 무서워서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앞의 책, p.65. 
 
31) 방대한 분량의 문집인 《雪溪隨錄》에 실려 있다. 《雪溪隨錄》은 27권 1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32) 錢泳, 《履園叢話》 권22 夢幻, 自挽詩條, 《淸代筆記小說大觀》 4, 上海古籍出版社(2007), p.3704. “虞山趙子梁同鈺能 詩, 才名洋溢. 庚辰九月十五日夜, 夢若有人謂之曰: ‘爾百日內當死, 尙懵懵耶!’ 醒而怪之, 乃仿隨園老人作自挽詩四首, 云: …(中略)…, 月三月餘, 幷無恙, 眞夢之不足徵也.”
 
   〈自輓〉
  태허 속 천지 정기가,
  얼음 얼듯 함께 모였다 흩어지는구나.
  장수와 요절에 어찌 길고 짧음을 따지랴,
  성인도 범인도 무덤 하나에 묻힌다네.
  한없이 슬퍼하는 것은 六親이고,33)
  애통해하는 것은 친구 누구일까.
  그 사이 난 무사히,
  삼가 신명의 도움 받아 돌아가네.
  元精太虛裡, 聚散同凝氷.
  彭殤豈長短, 聖凡一丘陵.
  哀哀六親是, 戚戚朋友誰.
  其間我無事, 恭肅保神歸.34)
 
33) 六親은 여섯 친족을 가리킨다.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여기서는 부모·형제·처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34) 朴致遠, 《雪溪隨錄》 권19,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 
 
 박치원은 소생한 뒤 마지막 부분을 바꿔 썼을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두 구절을 “그 사이 난 무사하게 되어, 삼가 신명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돌아왔네.”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의 자만시는 결국 시인의 죽음과 환생을 함께 담고 있는 셈이 된다.
 자만시의 구성 요소 중 하나임에도 죽음 후의 상황은 대다수의 작품에서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전통사회의 죽음 금기 풍조 등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자만시의 경우도 도연명의 〈의만가사〉와 같은 사후 상상은 극히 제한적으로 계승되었다. 중국의 자만시에서도 이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선 필요에 따라 특정 작품을 중심으로 자만시에 나타난 이른바 ‘사후생’의 양상들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자만시에서 죽음 후의 형상화는 魏晉시기 繆襲와 晉나라 陸機의 挽歌詩와 같은 자만시 형성기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목습의 시에선 “살았을 때는 수도에서 놀다가, 죽어서는 들판 가운데 버려지 는구나. 아침에 높은 집에서 나와, 저녁엔 황천 아래서 묵네. .... 형체와 용모는 조금씩 소멸되어 가니, 이빨과 머리카락도 당연히 빠지리라. 生時遊國都, 死沒棄中野. 朝發高堂上, 暮宿黃泉下. .... 形容稍歇滅, 齒髪行當墮.”라고 했고, 육기의 시에선 한 발 더 나가 “무덤 속 땅은 사방 극을 세울 듯 넓디넓고, 위로는 푸른 하늘 닿을 듯 높디높구나. 귀 기울여 저승 도랑 샘솟는 소리 듣고, 누워선 하늘에 매달린 해 달 별을 보네. 무덤 속 밤은 어찌 그리 쓸쓸한가, 긴긴밤 어찌 새벽이 밝아오랴!旁薄立四極, 穹隆放蒼天. 側聽陰溝涌, 臥觀天井懸. 廣宵何寥廓, 大暮安可晨.”라고 무덤 속의 나를 상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역시 이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최초의 완정한 자만시라 할 陶淵明(365?-427)의 〈擬挽歌辭〉 3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상례의식과 운구 장면을 담고 있는 두 번째 수와 매장과 매장 이후의 일을 묘사하고 있는 세 번째 수가 그런 예다.
 
  옛날엔 마실 술도 없더니, 이젠 다만 빈 술잔 채워지는구나.
  새로 빚은 술엔 거품 둥둥 떠있어도, 언제나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내 앞엔 안주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지만, 내 옆에선 친구들이 곡하고 있구나.
  말하고 싶지만 입에선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보려고 하지만 눈앞은 캄캄할 뿐이네.
  예전엔 화려한 집에서 잤건만, 이젠 거친 풀 우거진 곳에서 자게 되었네.
  거친 풀 속에 잠든 다른 사람 없고, 애써 바라보지만 아득할 뿐이네.
  하루아침에 문을 나서 떠나간다면, 돌아가려 하여도 밤은 끝이 없겠구나.
  在昔無酒飮, 今但湛空觴. 春醪生浮蟻, 何時更能嘗. 肴案盈我前, 親舊哭我傍. 欲語口無音, 欲視眼無光.
  昔在高堂寢, 今宿荒草鄕. 荒草無人眠, 極視正茫茫. 一朝出門去, 歸來夜未央. 
  황량한 풀 어떻게 이리 아득한가, 백양나무는 스산하기만 하네.
  된서리 내린 9월에, 날 묻으러 멀리 교외로 나왔구나.
  주위 사방에는 사람 사는 집도 없고, 높다란 무덤들만이 우뚝우뚝 솟았구나.
  말은 하늘 향해 우러러 울부짖고, 바람은 저절로 소슬하다오.
  무덤 구덩이 한번 닫히게 되면, 천년이 지나도 다시는 아침을 맞지 못하리라.
  천년이 지나도 다시 아침을 맞지 못하리니, 현달한 이라도 어쩔 수 없다네.
  방금 전 나를 장송해왔던 사람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친척들은 혹여 슬픔 남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역시나 벌써 노래하는구나.
  죽고 나서 무슨 할 말 있겠나, 몸을 의탁하여 산언덕과 함께할 뿐이라네.
  荒草何茫茫, 白楊亦蕭蕭. 嚴霜九月中, 送我出遠郊. 四面無人居, 高墳正嶣嶤. 馬爲仰天鳴, 風爲自蕭條.
  幽室一已閉, 千年不復朝. 千年不復朝, 賢達無奈何. 向來相送人, 各自還其家. 親戚或餘悲, 他人亦已歌.
  死去何所道, 託體同山阿.
 
 하지만 목습과 육기나 심지어 도연명의 경우도 무덤에 묻힌 상황까지만 주목하고 있어서 본격적 인 사후생을 상상했다고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자만시에서 사후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으론 南朝 宋 鮑照(414-466)의 〈松柏篇〉이 주목할 만하다. 이 시는 만가 형태는 아니지만 자신의 죽음을 주제로 한 自挽的 작품이다. 포조는 시의 병서(幷序)에서 다음과 같이 창작 배경을 밝히고 있다.
 
  내가 각기병으로 40여 일을 앓았다. 오랜 친구가 전에 《傳玄集》을 빌려갔는데, 내 병이 심해 졌기 때문에 마침내 돌려받았다. 책을 펼쳐보다 마침 악부시 〈龜鶴篇〉이 눈에 띄었다. 위중한 병중에 세상 하직하는 말을 보니 슬퍼져 마음이 아려왔다. 이처럼 중병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낫 지 않고 호흡이 가빠오니 눈에 보이는 것마다 슬프구나! 침·뜸과 약물 치료를 받는 사이에 〈구학 편〉을 본떠서 짓는다.35)
 
35) 錢仲聯 增補集說校(1980), 《鮑參軍集注》 권3,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p.178. “余患腳上氣四十餘日. 知舊先借《傳玄 集》, 以余病劇, 遂見還. 開袠, 適見樂府詩〈龜鶴篇〉. 於危病中見長逝詞, 惻然酸懷抱. 如此重病, 彌時不差, 呼吸之[乏]喘, 舉目悲矣! 火藥間缺[間闕]而擬之.”
 
 병서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포조는 각기병에 시달리던 와중에 우연히 西晉 傅玄( 217-278)의 악부시 〈龜鶴篇〉을 보고 이 작품을 지었다. 〈귀학편〉은 현재 전하지 않는데, 거북과 학이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이란 점을 고려하면 죽음 앞에서 삶의 무상함을 노래한 작품일 것으로 추정된 다.36) 포조는 제목에서 모의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진 않지만, 이 작품은 병서에서 밝힌 것처럼 〈귀학편〉을 본떠 지은 것[擬]이다. 따라서 〈송백편〉의 ‘송백’이란 상징 역시 ‘귀학’과 무관한 것일 수 없어서, 〈송백편〉의 ‘송백’ 역시 《論語》의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子罕〉)나 《莊子》의 “땅에서 생명을 받은 것 중에서는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올바르니, 홀로 사철 푸르디푸르고受命於地, 唯松柏獨 也, 在冬夏靑靑.”(〈德充符〉)에서 유래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중국 남방에서 무덤 앞에 심던 나무이기도 한데, 이 작품에선 장수하는 거북이·학과 함께 인생의 유한함 과 대비되는 상징이 된다.
 총 96구에 이르는 〈송백편〉의 내용은 換韻한 부분을 기준으로 총 열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락은 생전의 질병 치료 상황을, 두 번째 단락은 죽음을 맞는 장면을, 세 번째 단락은 임종 장면을, 네 번째 단락은 빈소에서 영결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다섯 번째 단락은 매장 직후 삶에 대한 미련을 토로하였고, 여섯 번째 단락은 지하세계의 적막함과 고통을 그렸다. 일곱 번째 단락은 무덤 주변의 정경을 묘사하였고, 여덟 번째 단락은 무덤 속의 답답함과 가족과 떨어져 만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였다. 아홉 번째 단락은 삼년상이 끝난 뒤의 고적함을, 마지막 단락은 時祭를 지내러온 자식의 애통해하는 모습을 그렸다.37)
 사후생의 관점에서 포조의 작품 중 흥미로운 점은 매장 이후의 일을 비교적 자세히 읊고 있다는 것이다. 포조는 시의 마지막 단락(제89-96구)에서 脫喪 후 時祭의 광경을 그려내고 있다. 
 
36) 林嵩山(1985), 《鮑照樂府彙評》, 臺北: 眞義出版社, p.20.
37) 송영정(2016), 〈《鮑參君集注》의 〈松柏篇〉 시 및 주석 역주〉, 《中國語文論譯叢刊》 제39집, 중국어문논역학회, pp.281-282. 
 
  時祭에는 흠향하러 돌아오길 바라지만, 사계절 무덤은 고요하기만 하다네.
  효성스런 자식 무덤 어루만지면서 울며, “아버지, 오시는 거 잊지 않으셨죠?”라고 하네.
  돌아가고 싶지만 마음에 주저주저하니, 보고 싶지만 전혀 방법이 없구나.
  황량한 무덤 옆에 안달복달하며, 마음은 완전히 무너지겠지.
  時祀望歸來, 四節靜塋丘. 孝子撫墳號, 父兮知來不. 欲還心依戀, 欲見絶無由. 煩寃荒隴側, 肝心盡崩抽.
 
 이렇게 사후생에 대한 상상력을 펼친 작품들은 조선시대의 경우 극히 드문 편이다. 도연명 자만시에서의 사후생에 대한 상상력도 남효온 외엔 제대로 된 계승의 사례가 드문 편이다. 사후생에 관한 상상력이 펼쳐진 경우로 金祖淳(1765-1832)의 자만적 작품 정도를 들 수 있다.
 
  〈스스로 애도하며自悼〉
  여인 남정네 할 것 없이 밤새도록 슬프게 통곡하니,
  주변 집집마다 기일이 다시 돌아왔음 알겠구나.
  등불 앞에서 당시 일 스스로 떠올리노라니,
  어찌 인간 세상 연연하여 다시 살아오겠는가.
  女哭男號徹曉哀, 家家知是再朞廻.
  燈前自念當時事, 何戀人間又活來.38)
 
38) 金祖淳, 〈自悼〉, 《楓皐集》 권5, 한국문집총간 289, p.112.
 
 金祖淳의 자만적 작품이다. 자만시는 자신의 죽음을 당겨서 상상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김조순의 시는 유독 닥쳐올 미래의 죽음을 사후의 특정 시공간으로 한정시켜 다룸으로써 독특한 효과를 빚어낸다. 이 시에는 자신이 죽은 뒤 2년 후의 기일, 남은 가족들의 슬픔이 제시되고 있다. 죽은 직후가 아니라 2년 뒤의 시간, 무덤이 아니라 집에서 지내는 기일의 제사를 소재로 함으로써 이 시는 사후생의 방식으로 나의 죽음을 상상하고 있다. 이런 특수한 설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포조의 〈松柏篇〉 같은 장편의 자만시에 등장한 적이 있다. 시 말미에 장례 뒤 자식이 時祭에 아버지의 혼이 오길 바라는 장면이 나온다.39) 하지만 〈송백편〉은 투병과 죽음, 그리고 상장례가 순차적으로 제시되고 있어 김조순의 시처럼 2년 뒤의 기일이란 특정 시공간만을 무대로 한 것은 아니다.
 이상의 작품들은 진정으로 사후생을 확신했다기보다 자만시 창작이 동기가 되어 가능한 상황에 대해 상상했다는 측면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죽음교육에서는 도리어 이런 상상력이 죽음의 터부를 깨는 데 다양하게 활용될 여지가 있다.
 한편 자만시에 나타난 사후생의 또 다른 특징은 죽음을 먼저 세상을 뜬 부모님 등 가족 곁으로 가는 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앞서 동아시아 죽음인식의 한 특성으로 제시한 바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玄德升(1564-1627)의 자만시를 들 수 있다.
 
39) 첸중롄(錢仲聯) 增補集說校(1980), 앞의 책, pp.178-184. “時祀望歸來, 四節靜塋丘, 孝子撫墳號, 父兮知來不?” 
 
  59세 나이 짧은 세월 아니니,
  인간 세상 온갖 영욕 갖추어 겪었다네.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 변화 살피고자 하니 어찌 한스러우랴,
  돌아가선 부모님 모시고 두 아이 만나겠지.
  五十九齡非短促, 人間榮辱備嘗之. 返眞觀化吾何恨, 歸侍雙親見兩兒.40)
 
40) 玄德升, 《希菴遺稿》 권2 〈自挽〉, 한국문집총간 속집 13, p.330. 
 
 현덕승이 쉰아홉 되던 임술년(1622)에 쓴 자만시다. 시인이 64세까지 살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임종 무렵에 쓴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구의 내용이 특별하다. 왜 저승에서 부모님 모시고 두 아이를 본다는 것일까? 해답은 현덕승의 문집인 《希菴遺稿》 권4에 실려 있는 〈行狀 略〉에 수록된 내용서 찾을 수 있다. 시인 자신이 시에 단 주석에 “부모님은 이미 장례 지냈고 두 자식도 잃었기 때문에 마지막 구절에 이같이 말한 것이다.考妣旣葬, 二子又失, 故末句云.”라고 쓰여 있다. 시인은 인간사 온갖 영욕을 다 겪었다고 썼다. 실제 그는 부침을 거듭했다.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워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기도 했지만, 광해군의 東宮記事官으로 있을 때 몰래 娼妓와 잤다고 하여 파직되었으며, 北評事로 있을 때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기도 했다. 그러다 광해군의 실정이 거듭되고 급기야 인목대비 폐비론까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천안 용두리에 숨어 살기에 이른다. 자만시를 쓴 바로 그 해 현덕승은 司藝가 되었지만 끝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 동안 세상살이의 풍파들을 견뎌왔기에 앞으로 닥쳐올 죽음도 두렵지 않았던 듯하다. 심지어 먼저 떠난 혈육을 생각하면 만날 날을 고대하게 된다. 현덕승에게 죽음은 이렇게 저승의 가족들과 해후하는 일이었다.41)
 이는 현덕승 자신의 ‘소망 투사(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지만, 퀴블러-로스 가 근사체험 환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후생을 주장한 내용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자만시에서 이런 사례들은 비교적 많이 눈에 띤다. 한국적 사후생의 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죽음학회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최준식은 사후생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죽은 뒤에도 인격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태도, 두 번째는 인간은 죽어서 영계로 가서 계속 생활한다고 믿는 태도, 세 번째는 사람은 죽어서 영계로 갈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고 환생한다는 윤회론을 주장하는 태도라고 한다.42) 제한적이지만 조선시대 자만시에 나타난 사후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첫 번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41) 졸역(2014), pp.181-182.
 
42) 최준식,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후생〉, 한국죽음학회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2013), 《죽음맞이-인간의 죽음, 그리고 죽어감》, pp.171-197.

Ⅳ. 죽음교육 자료로서 자만시의 가치

 죽음교육은 죽음, 죽음의 과정, 사별과 관련된 모든 측면의 교육을 포함하여 죽음과 관련된 주제에 대한 지식, 태도, 기술을 학습함으로써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다.43) 또 그 목적은 죽음에 대한 심리적·육체적 측면에서의 적극적인 준비와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가치관의 정립을 통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44)
 이렇게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60여 년 전부터 죽음교육을 인생의 발달단계별로 실시하면서 평생교육적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45) 이웃 일본에서는 독일학자 알폰스 디켄(Alfons Deeken, 1932-2020)이 1982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생과 사를 생각하는 세미나>를 조치대학(上智大學)에서 개최했고, 1995년 <생과 사를 생각하는 모임 전국협의회> 결성되어 그의 취지에 찬동하는 사람들의 그룹은 2001년 3월 현재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47개소가 된다고 한다.46) 특히 일본에서는 중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다양한 죽음교육 강좌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대만에서도 傅偉勳이 1993년 《死亡的尊嚴與生命的尊嚴》이란 책을 출간한 이래 여러 대학에서 죽음학(대만에선 生死學) 강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미국 고등학교의 죽음교육 프로그램 중엔 ‘예술과 죽음’이란 범주가 있는데, 이 범주에는 “학생들이 죽음의 주제를 다루는 대표적인 미술, 음악, 문학을 통하여 다양한 가치와 주제를 인식하 고, 이러한 가치와 주제가 자신의 견해와 어떻게 상응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는 교육목표가 설정되 어 있다고 한다.47) 그들은 죽음교육에서 시, 음악, 예술과 같은 분야에서의 접근이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만시의 죽음교육 활용 방안도 문학 예술 분야에서의 역할에 맞추어 설계될 필요가 있다.
 
43) W.G. Warren(1989), 《Death education and research: Critical perspectives》, The Haworth Press. 이영선·장환영 (2020), 〈죽음교육 연구동향 분석: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교육문화연구》 제26권 제2호, 인하대학교 교육연구소, pp.435-455. 중 p.436에서 재인용.
 
44) 김용해(2010), 〈죽음의 철학적 함의와 죽음교육의 필요성〉, 《생명연구》 18,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 pp.43-75.
 
45) 미국의 죽음교육 현황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강선보·이동윤(2019), 〈미국의 죽음교육과 한국교육에 주는 시사점〉, 《교육문제연구》 제32권 제1호, 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pp.99-115.
 
46) 알폰스 디켄(2008), 《인문학으로서의 죽음교육》, 전성곤 역, 인간사랑, p.209.
 
47) 이는 애머스트 고등학교((Amherst Regional High School) 프로그램 내용 중 하나이다. Ulin(1977), 《Death and Dying Education》, pp.49-57. 강선보·이동윤(2019), pp.99-115에서 재인용. 울린(Ulin)은 애머스트 고등학교에서 죽 음교육을 체계적으로 실행하고 그 과정을 책으로 남겨, 후에 죽음교육을 하고자 하는 다른 학교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자만시는 작자에 따라 임종시나 절명시와 다름없이 창작되기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만시는 자신의 죽음과 상·장례가 핵심 소재인 만큼 죽음교육의 텍스트로서 유용성을 갖추고 있다.
 알폰스 디켄은 일찍이 죽음 준비교육의 목표 중 하나로 “자신의 장례식 준비”를 든 바 있다.48) Eddy와 Alles도 《죽음교육(Death Education)》에서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죽음교육의 중요성 중 하나로 유언장, 상·장례 방법,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등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공개적으로 진행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49)
 앞서 언급한 디켄이 운영한 조치대학의 죽음학 커리큘럼에는 ‘이별 편지 쓰기’와 ‘만약 6개월밖에 못 산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와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자만시를 활용한 죽음교육에 도 참고할 만하다. 디켄에 따르면 ‘이별 편지’는 자신이 불치병으로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상정해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쓰는 일이다. 받는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 친구 등 누구라도 상관없다. 이 연습의 목적은 자신의 친한 사람에게 하는 마지막 인사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한다. 디켄은 이 경우 수강자들에게 자살을 앞둔 유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암 등 병이 전제가 된다는 것을 확실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전제한다.
 마찬가지로 ‘만약 6개월밖에 못 산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학생에게 자신이 암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통고를 받은 상황을 설정하여 작성하게 하는 것이다. 젊은 학생들은 갑자기 논술하라고 하면 순간적으로 생각난 것을 나열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우선 그러한 입장에 놓인다면 자신이 어떻게 할것인가를 잘 생각한 다음에 그 생각 내용을 적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한 용지를 나누어주기 전에 이름은 적지 않도록 하는데 이것이 시험이 아니라 생과 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기 위한 연습이라는 것을 확실히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디켄은 학생들의 작문 결과를 살펴본 뒤 죽음에 직면해서 느끼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각하는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50)
 
48) 알폰스 디켄(2008), pp.36-37·76-77; 김옥라,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다〉, 김옥라(2021) 외, pp.20-21.
 
49) 전병술, 〈왜 죽음교육이 필요한가〉, 한국죽음학회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2013), pp.133-136; 전병술(2015), 〈한국에서의 죽음학〉, 《동양철학》 제44집, 한국동양철학회, pp.59-63.
 
50) 알폰스 디켄(2008), pp.192-195.
 
 이상을 고려할 때 ‘자만시 쓰기’ 역시 죽음교육에 활용하기 적합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자만시를 죽음교육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죽음학적 측면에서 유의미한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 과 예시 바꿔쓰기 등으로 추체험의 장을 마련하는 방식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앞서 소개한 작품들을 통해 간략히 검토하였으므로 여기서는 후자의 문제에 집중하기로 한다. 또한 논의의 편의를 위해 죽음교육 대상자의 단계를 구분하지 않고 보편/평생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교육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 시를 쓰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자만시는 전문 문인들이라고 해도 쉽게 창작하기 어려운 특수한 주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피교육자가 죽음을 추체험하 기 위해 자만시를 직접 창작하게 하는 것은 극히 어려울 뿐아니라 비효율적이기까지 하다. 따라서 자만시 관련 죽음교육에선 자만시적 상황(예시)을 부여하고, 일정한 틀에 맞추어 자신의 상황을 가상하고 추체험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죽음교육 모델로서의 자만시는 죽음을 대비한다는 성격이 짙다. 조선 전기 南孝溫의 자만시에 대한 金宗直의 언급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저는 옛사람이 자신이 묻힐 자리를 미리 만들어 놓는 사례가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촌 노인이 자신의 관을 스스로 만들고 의복과 이불 등 염습 물건까지 빠짐없이 준비하곤 늘 관속에 누워보곤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는 단지 미리 준비해 둔다는 뜻만이 아니라 은연 중에 오래 살길 기원하는 술법이라 비웃는 자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만시를 모의한 것도 이런 종류가 아닌가요?
  僕嘗聞, 古之人, 多有豫作壽藏之兆者. 又嘗見鄕中老人, 自治棺槨, 至其衣衾斂襲之物, 無一不備, 常常自臥其中, 以迄沒齒, 此蓋非徒爲緩急之用, 或有哂其暗行祈禳之術者焉. 今秋江之擬挽, 無乃類 是耶?51)
 
51) 金宗直, 《佔畢齋集》 文集 권1, 〈答南秋江書〉, 한국문집총간 12, p.404.
 
 김종직의 말 속엔 우리 선인들의 죽음에 대한 대처 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선인들이 그러했듯이 죽음에 대한 터부를 없애기 위해 죽음을 예행 연습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에 더욱 애착을 갖게 하는 것이 자만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함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의 검토가 퀴블러-로스의 실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죽어감과 죽음, 그리고 근사체험의 여러 사례들을 기준으로 한 만큼, 이와 무관해 보이는 자만시들은 논의 밖에 두었다. 하지만 죽음교 육의 측면에선 도리어 이런 일상적 죽음인식을 완전히 벗어나거나 전혀 다른 시각에서 죽음을 조명하는 경우도 활용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걷어내기 위한 죽음 준비 교육 자료로서 이런 자만시들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 예로 비교적 많이 알려진 林悌(1549-1587)의 자만시를 들 수 있다.
 
  〈自挽〉
  庾亮 같은 풍류로 보낸 40년 세월,52)
  맑은 명성은 요즘 사람들 감동시키고도 남으리.
  이제사 학 타고 세상의 굴레 벗어나리니,
  바닷가 신선의 복숭아는 열매 새로 익겠지.53)
  江漢風流四十春, 淸名嬴得動時人.
  如今鶴駕超塵網, 海上蟠桃子又新.54)
 
52) 江漢風流는 東晋의 명신 庾亮의 풍류를 일컫는 말이다. 유량은 타고난 위의가 있고, 담대하여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침착 했던 인물이었는데, 뛰어난 인품과 정치적 수완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한때 반란을 유발한 책임을 물어 그를 죽이려 했던 陶侃마저 유량은 풍류만이 아니라 정치력도 겸비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世說新語》 〈容止〉편에 ‘江漢 風流’와 관련된 일화가 실려 전한다.
 
53) 蟠桃는 신화 중에 나오는 西王母가 심었다는 복숭아로, 3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3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으며 이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고 한다.
 
54) 林悌, 《林白湖集》 권3, 한국문집총간 58, p.288.

 

 세상을 뜬 해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시에는 생과 사를 조망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생전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던 시인의 실제 삶과 대별되는 자신의 일생에 대한 과장과 죽음에 대한 초월적 인식이 강렬한 기세로 펼쳐져 있다. 삶과 죽음에 어떠한 미련도 없는 듯한 시인의 죽음 수용 방식은 죽음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에게 두려움을 떨치고 죽음에 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을 고려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이 자만시를 텍스트로 한 죽음교육 단계를 설정해 보았다. 교육 대상은 일단 성인으로 가정하였다.

 

  자만시를 텍스트로 한 죽음교육

  단계 1단계: 자만시의 죽음 이해

  2단계: 죽음교육 모델로서의 자만시 유형별 감상

  3단계: 자만시 작성 준비: 자신의 상황별 유형 선택과 채워넣을 내용 준비하기

  4단계: 자만시 고쳐쓰기: 내용 바꿔쓰기 혹은 덧붙여 쓰기

 

 그리고 이상에 맞추어 자만시 작성 과정 시안을 다음과 같이 마련해 보았다.

 

  자만시 작성 과정

  1. 나의 죽음 상황 상상해보기

  1) 나의 장례식 구성하기: 참석자는?

  2) 나의 장례식 구경하기: 특히 슬퍼할 사람은?

  2. 사후생 상상해보기

  1) 나의 무덤

  2) 남은 가족들(배우자, 자식, 반려동물)

  3) 죽음 이후의 일: 남은 가족들, 제사

  3. 생각 정리하기

  4. 유형별 자만시 선택

  5. 바꿔쓰기 혹은 덧붙여 쓰기

 

 이를 위해 유형별 자만시를 예시로 제공하여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고 자만시를 작성하기 위한 디딤돌로 삼도록 할 것이다.55) 자만시 작성을 위한 자만시의 유형으론 크게 다음 세 가지를 설정할 수 있다. 

 

55) 필자는 앞서 간행한 역주평설서(2014)에서 자만시의 유형을 ‘죽음앞의 고독’, ‘초월적 죽음’, ‘가장된 죽음’, ‘죽음 앞에 서 혈육을 떠올리며’, ‘또다른 모습의 죽음’으로 분류한 바 있다. 하지만 죽음교육 텍스트로 제공하기엔 미흡한 점이 많 다. 앞으로 죽음교육의 성격과 목적에 맞는 자만시 유형 분류와 교육용 해설서의 마련이 필요할 듯하다.

 

  제1유형: 이별 혹은 만남으로서의 죽음: 1)부모님 2)배우자 3)자식 4)친구 5)기타

  제2유형: 내가 속한 사회와의 이별: 1)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2)내가 없는 사회는 어떤 모습 일까?

  제3유형: 나의 삶과 죽음: 1)후회없는 삶 2)餘恨

 

 이상 세 가지 유형 중 이해를 돕기 위해 제1유형의 예시와 자만시 작성 준비 과정을 간략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유형의 예시

  李亮淵(1771-1853)의 〈병세가 위급해져病革〉56)

  근심으로 보내온 일생,

  달은 암만 봐도 모자라더라.57)

  그곳에선 영원히 서로 대할 수 있을 터이니,

  이 길도 나쁘지만은 않네.

  一生愁中過, 明月看不足.

  萬年長相對, 此行未爲惡.

 

56) 이 작품은 규장각 소장 《韓客巾衍集》 뒤에 합철되어 있는 《臨淵堂別集》에 실려 있다. 김태준이 즐겨 암송한 시이기 도 하다. 최근 이양연의 시가 완역되었다. 박동욱(2021) 옮김, 《눈내린 길 함부로 걷지 마라》, 소명출판. 다만 위 시의 承句에 대해서는 역자와 해석 시각이 다름을 밝혀둔다. 같은 책, pp,425-426.
 
57) 이 두 구절은 “일생 근심으로 인해, 밝은 달 제대로 못 보았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나의 자만시를 쓰기에 앞서 생각해 보기

  위 시는 이양연이 만년에 읊은 자만적 작품입니다. 이양연은 낙척한 종실(宗室)의 후손으로 평 생 방외인(方外人)을 자처했던 말그대로 외롭게 살다간 시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의 죽음 은 ‘밝은 달(明月)’ 이란 개인적 상징물과 연계되어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만시에서 달은 자신의 죽음과 연계된 이미지로 즐겨 사용되어 왔습니다. 달은 항구적으로 과거와 현재, 또 미래의 일을 비추고 있으며, 이지러지고 차오르면서도 연속성을 가지며 존재하기에, 시인에게 달은 인간 삶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체물로 받아들여지는 듯합니다. 이양연은 아내와 자식들이 먼저 세상 을 떴다고 합니다. 그 중 큰 기대를 걸었던 둘째 아들 인익(寅翊)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에(〈祭亡子寅翊文〉), 침울한 정조의 배경을 짐작할 만합니다. 달을 아무리 바라봐도 부 족하게만 느껴진 이유가 삶의 시름 때문이건만, 사후에 달과 영원히 마주할 수 있기에 나쁘지 않 다는 이런 역설이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이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의식 (‘視死如歸’)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58)

 

58) 졸역(2014), pp.114-115; 졸저(2019), pp.197-198. 

 

  자만시 바꿔쓰기

  [ 1 ]으로 보내온 일생,

  [ 2 ]은/는 가.암만 봐도 모자라더라.

   그곳에선 영원히 서로 대할 수 있을 터이니,

  이 길도 나쁘지만은 않네.

 

  * 예시 중 [ ] 안에 들어갈 말을 채우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만시를 만들어봅시다. 먼저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먼저 세상을 뜬 혈육이나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봅시다. 다음으로 자신이 삶을 압축할 수 있는 단어를 [ 1 ]에 넣어보기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자신의 삶에 회한으로 남는 일을 골라 [ 2 ]에 넣고, [ 2 ]에 맞추어 밑줄 친 가.의 내용을 바꿔써 봅시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자만시를 낭송하며 자신의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상에서 제시한 것처럼 죽음교육에서 자만시를 활용한 교육은 기존의 유언장 써보기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유언장 작성과 달리 자만시는 좀 더 자신의 죽음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죽음교육의 취지에 좀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유언장의 내용이 대개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고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남기는 말(遺志)로 구성되는 반면, 자만시는 나의 죽음 자체에 좀 더 집중하여 죽음을 통한 ‘마지막 성장’이란 덕목에 좀 더 충실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자만시를 텍스트로 한 죽음교육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타인에게 맡겨 버리지 않고 스스로의 문제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만시는 이를테면 죽음을 미리 試演해 봄으로써 종국에 닥칠 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준비는 세상에 각인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죽음을 소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자만시는 한문학 연구의 대상으로 국한될 문제가 아니라 죽음교육의 텍스트로서 적극 활용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죽음 교육에서 유언장을 미리 써보는 것처럼 선인들이 자만시도 충분히 활용되길 기대해 본다.

 

Ⅴ. 남는 문제

 필자는 한문학 전공자로서 글쓰기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오랜 시간 예민한 감성의 동아시아 시인들이 만들어낸 自挽 전통이 죽음교육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확신 한다.

 강선보·이동윤은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죽음교육의 문제 중 하나로 학문 영역별 연구 및 다학문적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59) 때문에 앞으로 죽음교 육 과정을 구성할 때에는 죽음교육의 다학문적 기반을 고려하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참여시 켜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전통사회의 죽음인식에 대한 이해도 필요한 만큼 한문학 전공자들의 참여와 유관 한문학 자료의 교육 활용이 시급하다.

 이 방면 국내 선구적 학회인 한국죽음학회에서 펴낸 《죽음맞이》에 따르면, 죽음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인 죽음교육은 결국 생명교육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라고 한다.60) 자만시도 그러하다. 언뜻 염세적인 죽음의 시인듯하지만 자만시의 지향 역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죽음학을 일본학계에서 ‘死生學’으로 대만학계에선 ‘生死學’이라고 부르는 데 매우 적절 한 번안어 선정이라고 할 수 있다.61)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죽음학 혹은 죽음교육은 대개 죽어가는 과정과 죽음 후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어서, 퀴블러-로스가 죽음을 ‘성장의 마지막 단계’로 설정한 것 같은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목표에 도달하기 버겁다고 한다.62) 그런 측면에서 자만시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인식의 각성을 유도할 수 있는 죽음교육 텍스트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선 자만시의 죽음교육 텍스트로서의 가치에 집중한 까닭에 세부 교육방안에 관한 논의까 지는 이르지 못했다. 미비한 사항들은 별고의 과제로 삼고자 한다. 이와 별도로 청소년에 대한 죽음 교육은 이 글에서 주로 초점을 맞춘 성인 대상의 교육 내용과 변별하여 고려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글에선 자만시만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죽음과 관련된 기타 한문학 글쓰기에 대해선 다루지 못했다. 차후 만시, 묘지명, 제문 등을 포함한 유관 자료 전반에 대한 죽음학과 죽음교육적 분석을 기대해 본다. 이제 우리는 한문학 자료의 현상 확인을 넘어 가치의 발굴과 재구성을 통한 현대적 활용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59) 강선보·이동윤(2019), pp.99-115.
 
60) 한국죽음학회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회(2013), p.12.
 
61) 傅偉勳(1993), pp.13-14; 전병술(2013), pp.63-66. 물론 여기에는 죽음이란 말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동아시아 전통문화를 의식한 측면도 있다. 실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만학계에 생사학을 전파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傅偉勳 은 미국의 죽음학을 소개할 때는 ‘死亡學’이란 용어를 써서 ‘생사학’이란 용어가 동아시아 상황을 고려한 의도적인 조어 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죽음교육(Death Education)’도 ‘生死敎育’으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대만학계에서 ‘현대 생사 학의 濫觴’으로 평가 받는 傅偉勳은 현대 생사학을 광의와 협의로 구분하여 설명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광의의 현대 생사학은 실존 개체가 그 개별 생사문제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를 넘어 인류사회 전체 내지 전지 구 생태에 대한 전면적인 생사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학, 사회학,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치료, 사망학, 문화 인류학 및 기타 일반과학 내지 문화·예술 성과 등 현대 학문 이론의 학제간 결합을 필요로 해서, 시공을 초월한 하나의 거대한 임무로 소수 전문 학자에 의지해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반면 협의의 현대 생사학은 有情 개체마다의 개별 생사 문제를 탐색하고 참고하는 한편 철학적 계발과 인도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뜻은 有情 개체마다 더욱 성숙한 생사 지혜의 培養을 도와서 적극적인 인생태도를 세우고, 생명의 존엄을 活出하기를 기약하는 것이다. 또한 생명 성장의 최후 단계에 이르러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죽음의 존엄을 드러내어 자아 생명의 완미한 句點을 그리게 하는 것이다.
 
62) 전병술(2015), pp.6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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